"키워드 : 신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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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전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한 장수.
박영규 (朴英規)
고려전기 왕건의 후삼국 통일에 공헌한 장수.
남북국시대 때, 시중, 대장군, 대상 등을 역임한 무신.
강공훤 (康公萱)
남북국시대 때, 시중, 대장군, 대상 등을 역임한 무신.
수미강은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아들이며, 924년 7월 조물성전투에 출전하였다. 수미강은 이 전투에서 비록 성을 빼앗지 못하고 퇴각하였지만, 조물성을 구원하기 위해 온 고려의 장군 애선을 전사시키는 공을 세웠다. 수미강의 실체는 자세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가 견훤의 둘째 아들인 양검보다 서열이 앞선 것으로 보아, 수미강은 견훤의 첫째 아들인 신검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수미강 (須彌康)
수미강은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아들이며, 924년 7월 조물성전투에 출전하였다. 수미강은 이 전투에서 비록 성을 빼앗지 못하고 퇴각하였지만, 조물성을 구원하기 위해 온 고려의 장군 애선을 전사시키는 공을 세웠다. 수미강의 실체는 자세하지 않다. 그렇지만 그가 견훤의 둘째 아들인 양검보다 서열이 앞선 것으로 보아, 수미강은 견훤의 첫째 아들인 신검과 동일인일 가능성이 높다.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일리천전투 (一利川戰鬪)
일리천전투는 936년(태조 19)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 지방에서 고려와 후백제 사이에 있었던 대규모 전투이다. 이 전투는 고려와 후백제, 신라 간의 전쟁을 종식시킨 후삼국시대 최후의 전투였다. 936년 일선군(一善郡: 지금의 경상북도 구미시 일대)에서 일리천(一利川)을 사이에 두고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벌여 고려군의 일방적인 압승으로 끝이 났다. 이 전투에서의 승리로 인하여 태조 왕건은 후삼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후백제는 후삼국 시대에 견훤이 세운 나라이다. 견훤이 892년에 무진주에서 자립하였다가 900년에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후삼국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나라이다. 견훤이 신라 왕경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시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하였으며, 공산동수에서 고려 태조에게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백제는 고창전투와 운주성전투에서 패하면서 고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쫓겨났다가 고려로 귀부하였고, 신검도 일리천전투에서 고려에 항복하였다. 후백제는 2대 45년간 존속하다가 936년에 멸망하였다.
후백제 (後百濟)
후백제는 후삼국 시대에 견훤이 세운 나라이다. 견훤이 892년에 무진주에서 자립하였다가 900년에 완산주로 도읍을 옮기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여 후삼국의 주도권을 다투었던 나라이다. 견훤이 신라 왕경에 쳐들어가 경애왕을 시해하고 경순왕을 옹립하였으며, 공산동수에서 고려 태조에게 대승을 거두기도 하였다. 그러나 후백제는 고창전투와 운주성전투에서 패하면서 고려에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겼다. 견훤은 아들 신검에게 쫓겨났다가 고려로 귀부하였고, 신검도 일리천전투에서 고려에 항복하였다. 후백제는 2대 45년간 존속하다가 936년에 멸망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입상.
익산 관음사 목조 보살 입상 (益山 觀音寺 木造 菩薩 立像)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관음사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보살입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