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남북국시대 후백제 견훤의 아들.
가계 및 인적 사항
견훤의 아들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견훤 열전」에서 모두 10여 명이 나온다. 넷째 아들로 금강(金剛)이 있고 그 위의 형으로 신검(神劒) · 양검(良劒) · 용검(龍劒)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고 『삼국유사』 후백제 견훤조에 인용된 「이제가기(李磾家記)」에서는 ”견훤에게 자식 아홉이 있는데, 첫째가 신검(神劒: 혹은 견성(甄成)이라고도 함)이고, 둘째가 태사(太師) 겸뇌(謙腦), 셋째가 좌승(佐承) 용술(龍述), 넷째가 태사(太師) 총지(聰智), 다섯째가 대아간(大阿干) 종우(宗祐), 여섯째는 이름을 알 수 없고, 일곱째가 좌승(佐承) 위흥(位興), 여덟째가 태사(太師) 청구(靑丘), 딸 하나가 국대부인(國大夫人)이다. 모두 상원부인(上院夫人) 소생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에 보이는 견훤의 아들 10여 명 중에서는 수미강의 존재를 확인할 수가 없다.
그런데 『고려사』와 『고려사절요』 태조 7년(924) 7월 기사에는 “견훤이 아들 수미강과 양검(良劍) 등을 보내었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수미강이 어떤 존재였는지 확인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삼국사기』 견훤 열전을 포함한 많은 사료에서 견훤의 둘째 아들이 양검(良劍)이라는 사실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을 고려하면, 견훤의 둘째 아들인 양검보다 앞에 등장하는 수미강은 견훤의 첫째 아들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만 견훤의 첫째 아들로는 신검〔神劒, 혹은 견성(甄成)이라고도 함〕이 이미 존재한다. 따라서 수미강은 신검과 동일인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많은 연구자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 수미강을 신검과 동일인으로 보고 있다.
주요 활동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
- 『고려사절요』
- 『삼국사기』
- 『삼국유사』
단행본
- 정구복 외, 『역주 삼국사기 4: 주석편(하)』(한국학중앙연구원, 2012)
- 신호철, 『후백제견훤정권연구』(일조각, 1993)
논문
- 박한설, 「후백제 금강에 대하여」(『대구사학』18, 대구사학회,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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