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봉(泰封)의 관계에서 최고 등급에 해당하는 품계이다. 대재상은 신라에서 차재상(次宰相)과 제삼재상(第三宰相)보다 서열상 위에 있는 재상(宰相)이었으며, 상대등(上大等)을 지칭하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궁예가 태봉 시기에 대재상(大宰相) · 중부(重副) · 태사훈(台司訓) · 보좌상(輔佐相) · 주서령(注書令) · 광록승(光祿丞) · 봉조판(奉朝判) · 봉진위(奉進位) · 좌진사(佐眞使) 등 9등급으로 구성된 품계를 설치하였는데, 대재상은 이때에도 가장 높은 등급에 해당하였다.
태봉 시기의 이 품계는 고려 초에도 대서발한(大舒發韓) · 서발한(舒發韓) · 이찬(夷粲) · 소판(蘇判) · 파진찬(波珍粲) · 한찬(韓粲) · 알찬(閼粲) · 일길찬(一吉粲) · 급찬(級粲) 등 9등급으로 구성된 신라의 제도와 함께 사용되고 있었다. 그것은 얼마 뒤에 대광(大匡) · 정광 · 대승(大丞) · 대상(大相) 등의 품계로 바뀌었다가 995년(성종 14)에 다시 문무(文武)를 구별한 문산계(文散階)로 바뀌었다고 한다.
그런데 궁예가 904년에 국호를 마진(摩震)으로 정하였을 때 정광(正匡) · 원보(元輔) · 대상(大相) · 원윤(元尹) · 좌윤(佐尹) · 정조(正朝) · 보윤(甫尹) · 군윤(軍尹) · 중윤(中尹) 등 9등급으로 구성된 품직이 이미 설치되어 있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대재상은 신라에서 본래 상대등을 지칭한 것이었는데, 궁예가 마진 시기에 정광 중심의 품계를 마련하면서 폐지되었다가 태봉 시기에 다시 대재상 중심의 품계로 정비하면서 부활한 것으로 이해된다.
또한 그것은 고려 건국 이후에도 신라에서 유래한 대서발한(大舒發韓) 중심의 제도와 함께 사용되었으며, 그 뒤에 다시 대광(大匡) 중심의 품계로 재편되면서 폐지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995년(성종 14) 이후에는 그것이 문무로 구별된 문산계에 의해 완전히 대체된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