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진(摩震)과 태봉 시대에 궁궐과 조정의 경적(經籍)과 축소(祝䟽)를 관장하기 위하여 설치된 부서이다. 904년(효공왕 8)에 궁예는 국호를 마진이라 하고 연호를 무태(武泰)라 하였는데, 이때 중앙에 광평성(廣評省)을 포함한 19개의 관부(官府)를 설치하였다. 이 가운데 10번째 관부가 금서성(禁書省)이었는데, 그것은 고려의 비서성(秘書省)과 같은 것이었다고 한다.
금서성은 고려 태조 원년의 백서성(白書省) 및 국초의 내서성(內書省)으로 이어지며, 그 뒤에 도서(圖書)와 축문 등을 담당한 비서성(祕書省) · 전교시(典校寺)와 연결되는 것으로 보아, 학문적인 관부로 추측된다.
고려의 비서성은 995년(성종 14)에 국초의 내서성을 고친 것이다. 1298년(충렬왕 24)에 비서감(秘書監)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전교서(典校署)로 강등되었다가 그 뒤에 전교시(典校寺)로 승격되었다. 또한 공민왕(恭愍王)은 전교시를 비서감으로 고쳤다가 다시 전교시로 고치기를 반복하였다. 역할은 경적과 축소를 담당하는 것이었다.
한편, 918년(태조 원년)에서 930년(태조 13) 사이에 보이는 백서성이 내서성의 전신이라는 견해도 있다. 이에 따르면, 금서성은 궁예가 국호를 마진으로 정하면서 관제를 정비할 때 궁궐 및 조정의 경적과 축소를 담당할 목적으로 설치되었는데, 고려 건국을 전후한 시기에 백서성으로 명칭을 바꾸었고 태조 13년 이후에 다시 내서성으로 고쳤다가 성종 14년에 비서성으로 다시 고쳤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