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경상북도 지역에 위치한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안동과 상주 사이에 있던 성으로도 추정한다. 924년(태조 7) 7월 후백제왕 견훤(甄萱)이 아들 수미강(須彌康)과 양검(良劍)을 보내 조물군(曹物郡)을 공격하였다.
이에 고려 태조가 장군 애선(哀宣)과 왕충(王忠)을 파견하여 구원하고, 주민들이 굳게 수비하였으므로 후백제 군대는 물러갔다. 925년 다시금 조물군에서 고려군과 후백제군이 전투를 하였으나, 후백제군이 매우 날래어 승부를 결단하지 못하였다.
이 때 고려 유검필(庾黔弼)이 군대를 이끌고 와 고려군을 도왔으므로, 서로 승부를 내지 못하고 인질을 교환한 뒤 회군하였다. 928년 8월 원보(元甫) 왕충이 조물성에 가서 죽령로(竹嶺路)를 차단한 후백제군을 정탐하였다는 기록을 볼 때, 조물성은 계속 고려의 소유가 된 듯하다.
933년 8월조물군에서 고려 태조가 3군(軍)을 거느리고 후백제군과 싸웠으나, 하군(下軍) 박수경(朴守卿)의 군대만 이겼을 뿐이었다. 이렇듯 조물성은 당시 신라지역내에서 후삼국의 쟁패를 결정짓는 전략적 요충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