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아단성"
검색결과 총 3건
영양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90~618년이며, 평원왕의 장자이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5권이 편찬되었고, 승려 혜자와 담징이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는 등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 한강유역 탈환을 둘러싸고 신라와 공방이 이어졌고 수나라와 접근하던 백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수나라와는 초기에 화전 양면 전술을 취하다가 고구려가 요서를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총 4차례에 걸친 수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130만 대군으로 이루어진 2차 공격을 을지문덕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영양왕 (嬰陽王)
영양왕은 삼국시대 고구려 제26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90~618년이며, 평원왕의 장자이다. 고구려의 역사서인 『신집』 5권이 편찬되었고, 승려 혜자와 담징이 일본으로 가서 쇼토쿠태자의 스승이 되는 등 일본에 많은 문화를 전파했다. 한강유역 탈환을 둘러싸고 신라와 공방이 이어졌고 수나라와 접근하던 백제를 공격하기도 했다. 수나라와는 초기에 화전 양면 전술을 취하다가 고구려가 요서를 선제공격하면서 전투가 시작되어 총 4차례에 걸친 수의 공격을 받았다. 특히 130만 대군으로 이루어진 2차 공격을 을지문덕 등의 활약으로 격퇴했다.
아차산성(阿且山城)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 남단에 있는 둘레 1km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발굴 조사 결과, 아차산성은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고, '북한산성(北漢山城)'이라 적힌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신라 진평왕 대인 604년에 재설치된 신라 북한산주(北漢山州)의 치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차산성은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아차성(阿且城),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단성(阿旦城) 등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관련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아차산성 (阿且山城)
아차산성(阿且山城)은 서울특별시 광진구 아차산 남단에 있는 둘레 1km의 포곡식 석축 산성이다. 발굴 조사 결과, 아차산성은 7세기를 전후한 시점에 축조되었고, '북한산성(北漢山城)'이라 적힌 명문 기와가 발견되어 신라 진평왕 대인 604년에 재설치된 신라 북한산주(北漢山州)의 치소라는 것이 밝혀졌다. 아차산성은 백제 개로왕이 고구려 장수왕에게 죽임을 당한 아차성(阿且城), 고구려 온달 장군이 신라군과 싸우다가 전사한 아단성(阿旦城) 등으로 알려졌으나 이와 관련된 고고학적 증거는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다.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영양왕 대의 장수이다. 『삼국사기』에 「온달전」이 있다. 전통적인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은 아니었다고 이해된다. 하위 귀족 또는 신흥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평원왕의 공주와 혼인하였고, 그의 후원으로 군사적 능력을 함양하고 군인으로 출세하였다. 평원왕 대 후주와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대형(大兄) 관등을 받았다. 영양왕 즉위 이후 남한강 유역을 수복하겠다고 자청하여 출정하였다가 아단성 아래에서 전사하였다.
온달 (溫達)
온달은 고구려 평원왕·영양왕 대의 장수이다. 『삼국사기』에 「온달전」이 있다. 전통적인 고위 귀족 가문 출신은 아니었다고 이해된다. 하위 귀족 또는 신흥 귀족 가문 출신이었다고 보기도 한다. 평원왕의 공주와 혼인하였고, 그의 후원으로 군사적 능력을 함양하고 군인으로 출세하였다. 평원왕 대 후주와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워 대형(大兄) 관등을 받았다. 영양왕 즉위 이후 남한강 유역을 수복하겠다고 자청하여 출정하였다가 아단성 아래에서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