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양기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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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기훈은 조선 후기 평양에서 활동하며 노안도에서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한 화가이다. 갈대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장면을 그린 노안도는 노후의 평안[老安]과 음이 같아 축수용 병풍으로 인기를 끌었다. 수묵 위주의 문인 취향으로 완성된 양기훈의 노안도는 근대기 화단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양기훈 (楊基薰)
양기훈은 조선 후기 평양에서 활동하며 노안도에서 개성적인 화풍을 이룩한 화가이다. 갈대밭에 기러기가 내려앉는 장면을 그린 노안도는 노후의 평안[老安]과 음이 같아 축수용 병풍으로 인기를 끌었다. 수묵 위주의 문인 취향으로 완성된 양기훈의 노안도는 근대기 화단의 전개에 큰 영향을 미쳤다.
노안도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기러기와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그림은 이상적인 가을 풍경으로서 감상되었다. ‘노안(蘆雁)’은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평안한 노후를 의미하였으며,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길상적 의미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노안도 (蘆雁圖)
노안도는 갈대밭을 배경으로 기러기를 함께 그린 그림이다. 기러기와 갈대가 어우러진 풍경을 그린 그림은 이상적인 가을 풍경으로서 감상되었다. ‘노안(蘆雁)’은 ‘노안(老安)’과 음이 같아 평안한 노후를 의미하였으며, 부부의 화목을 상징하는 길상적 의미에서 그려지기도 하였다.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묵매 (墨梅)
사군자의 하나인 매화를 소재로하여 수묵으로 그린 그림.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
김유탁 (金有鐸)
김유탁은 일제강점기 때, 「화조사군자」, 「조안도」 등을 그린 서화가이다. 집안 어른들에게 글씨와 그림을 배웠다. 21세 무렵 도화서 화원 양기훈에게 사군자와 화조를 배웠고 조석진 등의 화법을 익히기도 했다. 1906년에 한국 화랑의 효시되는 '수암서화관'을 설립하였다. 이후 기성서화미술회에 참여하며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고 서울 삼청동에 사설 서화학원인 서화지남소를 설립하기도 했다. 평양기생학교에서 그의 『남화초단격』을 사군자 교재로 사용하였다. 「후출사표」, 「전적벽부」, 「모란」, 「임탄은죽」 등이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