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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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여는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수현방궤기』, 『공목장기』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73년(광종 24)에 사망했다. 경전의 해석과 강설에 뛰어났으며 남악·북악 두 파로 갈라진 화엄종을 하나로 통일했다. 화엄을 처음 전한 의상을 이어 교풍을 바로잡고 교세를 떨친 화엄의 거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자가 3000인에 이르렀다. 광종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에 입적했다. 불교 이외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향가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균여 (均如)
균여는 고려전기 「보현십원가」, 『수현방궤기』, 『공목장기』 등을 저술한 승려이다. 923년(태조 6)에 태어나 973년(광종 24)에 사망했다. 경전의 해석과 강설에 뛰어났으며 남악·북악 두 파로 갈라진 화엄종을 하나로 통일했다. 화엄을 처음 전한 의상을 이어 교풍을 바로잡고 교세를 떨친 화엄의 거장으로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자가 3000인에 이르렀다. 광종이 그를 위해 창건한 귀법사에서 주지로 있으면서 민중을 교화하고 불법을 펴다가 973년에 입적했다. 불교 이외의 학문에도 조예가 깊었고 향가를 지어 국문학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고려 후기에, 부지밀직사사, 동판밀직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공유 (孔愉)
고려 후기에, 부지밀직사사, 동판밀직사, 판삼사사 등을 역임한 무신.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개경 승도의 난 (開京 僧徒의 亂)
개경 승도의 난은 고려 후기 무신정권에 불만을 품은 승려들이 개경에서 일으킨 저항이다. 1174년(명종 4) 귀법사(歸法寺) 승려들의 저항을 시작으로 1217년(고종 4)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에 대비해 종군(從軍)하던 승려들이 저항을 일으켰다. 이들 저항의 이면에는 무신정변 이전까지 고려 불교계를 이끌었던 교종(敎宗) 교단이 무신정변으로 인하여 그들을 후원했던 왕실과 문벌 귀족들의 권력이 약화하고, 선종(禪宗) 교단으로의 교체가 그 배경으로 작용하였다.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안종 (安宗)
고려전기 제1대 태조의 여덟째 아들인 왕자.
염승익은 고려 후기에 필도치, 도첨의중찬, 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78년(충렬왕 4) 필도치(비칙치)에 임명되었고, 현화사의 불전을 세웠으며, 현화사를 수리하고, 남계원·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묘법연화경』 7축과 「아미타여래도」를 제작, 봉안하였다.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염승익 (廉承益)
염승익은 고려 후기에 필도치, 도첨의중찬, 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78년(충렬왕 4) 필도치(비칙치)에 임명되었고, 현화사의 불전을 세웠으며, 현화사를 수리하고, 남계원·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묘법연화경』 7축과 「아미타여래도」를 제작, 봉안하였다.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고려 후기에, 지도첨의상의, 첨의평리, 처인군 등을 역임한 문신.
이진 (李珍)
고려 후기에, 지도첨의상의, 첨의평리, 처인군 등을 역임한 문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