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왕성"
검색결과 총 4건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공주 공산성 (公州 公山城)
공주 공산성은 충남 공주시 산성동에 있는 백제 웅진기의 왕성(王城)이다. 그래서 당시에는 웅진성(熊津城)이라 불렀다. 성벽은 현재 동벽 일부가 토성이고 나머지는 석성으로 되어 있는데, 그에 따라 백제 때에는 토성으로 축조하였다가 조선시대 때 석성으로 개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웅진기에는 왕성이고, 사비기에는 북방성(北方城)이었으며, 통일신라 때는 웅천주(熊川州)의 치소성이기도 했다. 임진왜란 이후 충청 감영(監營)이 충주에서 공주로 옮겨질 때 감영이 성내에 있었고, 인조 임금이 이괄의 난을 피해 이곳으로 피신하기도 하였다.
도성은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백성들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도록 쌓은 성곽이다. 국도 또는 왕도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읍(邑)이라 하였으며, 읍이 국(國)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합 권력의 상징인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읍을 도(都)라 하였다. 따라서 도성은 백성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는 외곽 성이 없더라도 왕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므로 왕도라 부르기도 한다.
도성 (都城)
도성은 왕이 거주하는 왕성과 백성들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도록 쌓은 성곽이다. 국도 또는 왕도라고도 한다. 중국에서는 도시를 둘러싼 성벽을 읍(邑)이라 하였으며, 읍이 국(國)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통합 권력의 상징인 종묘와 사직을 갖추고 있는 읍을 도(都)라 하였다. 따라서 도성은 백성의 거주 지역을 아우르는 외곽 성이 없더라도 왕이 거주하는 지역을 의미하였으므로 왕도라 부르기도 한다.
경주 월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신라의 왕성이다. 월성은 동서의 길이가 890m, 남북의 길이가 260m인 긴 반달 모양의 테뫼식 토성으로 둘레는 2,340m이다. 월성은 201년(파사 이사금 22)부터 사료에 등장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하여 교호 성토된 토성은 5세기 초반에 완공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월성은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고려시대 이후에는 재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월성은 신라의 성장과 번영, 그리고 멸망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경주 월성 (慶州 月城)
경주 월성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위치한 신라의 왕성이다. 월성은 동서의 길이가 890m, 남북의 길이가 260m인 긴 반달 모양의 테뫼식 토성으로 둘레는 2,340m이다. 월성은 201년(파사 이사금 22)부터 사료에 등장하지만, 발굴 조사를 통하여 교호 성토된 토성은 5세기 초반에 완공된 것으로 보고되었다. 월성은 신라가 멸망하는 시기까지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고려시대 이후에는 재사용되지 않았다. 이러한 점에서 월성은 신라의 성장과 번영, 그리고 멸망기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전기 석축 성곽. 도성.
개성 성곽 (開城 城廓)
북한 황해북도 개성시에 있는 고려전기 석축 성곽. 도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