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융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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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광무 (光武)
광무(光武)는 대한제국 고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이다. 황제국으로서 대한제국 선포에 앞서 1897년 8월 14일에 새로 ‘광무(光武)’라는 연호를 제정하엿다. 순종황제 재위 기간의 연호인 융희가 제정되는 1907년 8월 2일까지 사용되었다.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순종 (純宗)
순종은 대한제국기 제2대(재위: 1907∼1910) 황제이다. 1874년 2월 고종과 명성황후(明成皇后) 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1875년 세자로 책봉되었다. 1882년 뒤에 순명효황후(純明孝皇后)가 된 민씨를 세자빈으로 맞았고, 1904년에는 윤씨를 황태자비로 새로 맞이하였다. 1907년 고종이 일제의 강요에 의해 왕위에서 물러나자 대한제국의 황제로 즉위하여 연호를 융희(隆熙)로 고쳤다. 대한제국 붕괴 후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어 창덕궁에서 거처하다가 1926년에 사망하였다.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황제 (皇帝)
황제는 고대, 중국의 진시황(秦始皇) 이후 동아시아에서 유일무이한 최고 지도자를 뜻하는 칭호이다. 군주에 대한 명칭으로 진나라의 시황제가 처음 만들었으며, 명칭에 수반되어 황제에게만 독점적으로 허용되는 호칭 · 의례 등도 생겨났다.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제후국의 위상이어서 황제를 칭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의 외왕내제(外王內帝)와 같이 부분적으로 황제국의 요소를 도입하기도 하였다. 개항 이후 '대군주폐하(大君主陛下)'라는 과도적 명칭을 거쳐 1897년에 대한제국 선포와 함께 고종이 황제 자리에 오르며 황제국 체제의 격식이 도입되었다.
민력은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양력 달력이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기존의 달력인 명시력의 발행은 중단되고,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민력이라는 이름의 달력을 1911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하였다. 민력은 전통적인 달력 체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나, 양력 날짜와 요일을 중심으로 달력 체재가 개편되었다는 의미가 크며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달력이기 때문에 일본 연호가 사용되었다.
민력 (民曆)
민력은 일제강점기에 발행한 양력 달력이다. 1910년에 대한제국이 일본에 병합되면서 기존의 달력인 명시력의 발행은 중단되고, 조선총독부에서 조선민력이라는 이름의 달력을 1911년부터 1945년까지 발행하였다. 민력은 전통적인 달력 체재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나, 양력 날짜와 요일을 중심으로 달력 체재가 개편되었다는 의미가 크며 일제강점기에 발행된 달력이기 때문에 일본 연호가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