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이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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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사는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으로,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 문하에서 활동했고, 윤순에게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 정립에 이바지했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 『원교서결』과 같은 서예 이론서를 남겼다. 또한 산수와 인물을 그린 작품도 전한다.
이광사 (李匡師)
이광사는 조선 후기 원교체를 완성한 서화가이다. 소론 명문가 출신으로, 양명학의 선구 정제두 문하에서 활동했고, 윤순에게 서예를 배워 동국진체 정립에 이바지했다. 전서, 예서, 해서, 초서에 두루 능했고, 서첩과 금석문, 편액 등의 묵적, 『원교서결』과 같은 서예 이론서를 남겼다. 또한 산수와 인물을 그린 작품도 전한다.
조선후기 양명학자·서예가 이광사가 두보의 시 18수를 다양한 서체로 필사하여 엮은 서첩.
이광사 필적 원교법첩 (李匡師 筆蹟 員嶠法帖)
조선후기 양명학자·서예가 이광사가 두보의 시 18수를 다양한 서체로 필사하여 엮은 서첩.
이광사 필 『서결』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전대 서예의 이론적 체계를 참고하여 저술한 서예 이론서이다. 이광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1764년에 저술을 완성하였고, 2년 뒤 1766년에 직접 필사하여 큰 아들 이긍익에게 준 서첩이다. 왕희지의 서법와 전서, 예서로 된 여러 비갈의 글씨를 학습할 것을 역설하여 후대 서단에 고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이광사 필 서결 (李匡師 筆 書訣)
이광사 필 『서결』은 조선 후기, 서예가 이광사가 전대 서예의 이론적 체계를 참고하여 저술한 서예 이론서이다. 이광사가 유배 생활을 하던 1764년에 저술을 완성하였고, 2년 뒤 1766년에 직접 필사하여 큰 아들 이긍익에게 준 서첩이다. 왕희지의 서법와 전서, 예서로 된 여러 비갈의 글씨를 학습할 것을 역설하여 후대 서단에 고비의 중요성을 환기시키는 역할을 하였다.
신한평은 조선 후기 「이광사 초상」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조선 전기 문신 신말주의 10대손이자, 신윤복의 아버지이다. 1784년부터 1809년까지 26년간 차비대령화원으로 봉직하며 어용 화사에 3번 발탁되었다. 그러나 왕실 납품용 책가도를 잘못 그려 도화서에서 퇴출당했다. 산수, 인물, 속화, 영모, 초충, 산수, 누각, 문방, 매죽 등을 두루 섭렵했다. 대표작으로는 「이광사 초상」, 「화조도」, 「쌍순도」, 「우경산수도」 등이 있다.
신한평 (申漢枰)
신한평은 조선 후기 「이광사 초상」을 그린 도화서 화원이다. 조선 전기 문신 신말주의 10대손이자, 신윤복의 아버지이다. 1784년부터 1809년까지 26년간 차비대령화원으로 봉직하며 어용 화사에 3번 발탁되었다. 그러나 왕실 납품용 책가도를 잘못 그려 도화서에서 퇴출당했다. 산수, 인물, 속화, 영모, 초충, 산수, 누각, 문방, 매죽 등을 두루 섭렵했다. 대표작으로는 「이광사 초상」, 「화조도」, 「쌍순도」, 「우경산수도」 등이 있다.
조선후기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화가.
윤순 (尹淳)
조선후기 예조판서, 평안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서화가.
조선 영조 때 이진유(李眞儒)가 지은 가사.
속사미인곡 (續思美人曲)
조선 영조 때 이진유(李眞儒)가 지은 가사.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이세택 (李世澤)
조선 후기에, 우부승지, 대사간, 대사헌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최초로 양명학의 사상적 체계를 이룬 정제두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신재집』을 저술한 학자.
이영익 (李令翊)
조선 후기에, 최초로 양명학의 사상적 체계를 이룬 정제두의 학통을 계승하였으며, 『신재집』을 저술한 학자.
정제두는 조선 후기 『학변』, 『존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49년(인조 27)에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정제두는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도학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배척했으나, 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화하여 양명학파를 확립하였다. 그의 『학변(學辨)』, 『존언(存言)』은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정제두 (鄭齊斗)
정제두는 조선 후기 『학변』, 『존언』 등을 저술한 학자이다. 1649년(인조 27)에 출생하여 1736년(영조 12)에 사망하였다. 자는 사앙(士仰), 호는 하곡(霞谷), 추곡(楸谷)이다. 정제두는 조선에 전래된 양명학을 연구하고 발전시켜 최초로 사상적 체계를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경세론을 전개하였다. 당시의 도학은 양명학을 이단으로 배척했으나, 정제두는 양명학을 체계화하여 양명학파를 확립하였다. 그의 『학변(學辨)』, 『존언(存言)』은 양명학의 치양지설과 지행합일설을 받아들여 저술한 것이다.
최북 필 「단구승유도」는 1749년(영조 25) 화원 최북이 단양의 도담삼봉을 유람하고 그린 실경산수도이다. 당시 유행했던 정선의 화풍에서 벗어나 최북 특유의 개성적인 남종화법으로 묘사되었다. 그림에 발문을 쓴 이광사의 글씨는 연도를 알 수 있는 기년작(紀年作)이라는 점에서 그의 예서체를 비롯한 서체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2015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최북 필 단구승유도 (崔北 筆 丹丘勝遊圖)
최북 필 「단구승유도」는 1749년(영조 25) 화원 최북이 단양의 도담삼봉을 유람하고 그린 실경산수도이다. 당시 유행했던 정선의 화풍에서 벗어나 최북 특유의 개성적인 남종화법으로 묘사되었다. 그림에 발문을 쓴 이광사의 글씨는 연도를 알 수 있는 기년작(紀年作)이라는 점에서 그의 예서체를 비롯한 서체의 변화 과정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2015년 12월 10일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동국진체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이다.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의식의 영향으로 발현된 조선의 서체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 이서(李?)가 『필결(筆訣)』을 저술하여 창시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진체(晉體)를 바탕으로 미법(米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창안한 서체로 옥동체(玉洞體)라고도 한다. 윤두서와 윤순에게 전해졌다가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법의 근원에 나아가 서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던 우리나라 고유 서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동국진체 (東國眞體)
동국진체는 중국의 영향에서 벗어나 조선의 고유색을 드러냈던 18세기에 출현한 조선 고유의 서체이다. 조선이 곧 중화라는 조선중화의식의 영향으로 발현된 조선의 서체이다. 남인 명문가 출신 이서(李?)가 『필결(筆訣)』을 저술하여 창시했다고 평가되고 있다. 전통적인 진체(晉體)를 바탕으로 미법(米法)을 부분적으로 수용하여 창안한 서체로 옥동체(玉洞體)라고도 한다. 윤두서와 윤순에게 전해졌다가 윤순의 서법을 계승한 이광사에 의해 완성되었다. 서법의 근원에 나아가 서법을 새롭게 정립하고자 시도되었던 우리나라 고유 서체라는 데에 의의가 있다.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수원대학교 부속 박물관.
수원대학교 박물관 (水原大學校 博物館)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수원대학교 부속 박물관.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김정희가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 『서결』의 내용을 반박한 행서 서첩이다. 이광사의 『서결』 중 모두 9가지 내용을 들어 비판했으며, 마지막에는 운필법과 당비의 선행 학습을 통해 왕희지 고법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였다.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 (金正喜 筆 書員嶠筆訣後)
김정희 필 『서원교필결후』는 김정희가 이광사의 서예 이론서 『서결』의 내용을 반박한 행서 서첩이다. 이광사의 『서결』 중 모두 9가지 내용을 들어 비판했으며, 마지막에는 운필법과 당비의 선행 학습을 통해 왕희지 고법으로 들어갈 것을 제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