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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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은 고려시대의 신분계층이다. 직역을 담당하는 인리(人吏)·향리(鄕吏)·기인(其人)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촌락의 지배자인 촌장(村長)·촌정(村正)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지연적·혈연적으로 결합된 사회집단으로, 군현인(郡縣人)으로 구별되는 신분층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구별되는 신분층이 아니라 토성(土姓)와 연결하여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읍치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촌락이 흡수되어 읍사의 지배기구에 참여하는 촌장·촌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백성 (百姓)
백성은 고려시대의 신분계층이다. 직역을 담당하는 인리(人吏)·향리(鄕吏)·기인(其人) 등과 함께 사용되었다. 이를 근거로 촌락의 지배자인 촌장(村長)·촌정(村正)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이해하는 견해가 있다. 한편 지연적·혈연적으로 결합된 사회집단으로, 군현인(郡縣人)으로 구별되는 신분층이라고 이해하는 견해도 있다. 구별되는 신분층이 아니라 토성(土姓)와 연결하여 접근하는 견해도 있다. 읍치가 확대되면서 주변의 촌락이 흡수되어 읍사의 지배기구에 참여하는 촌장·촌정 등을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된다.
대구광역시 북구(옛 칠곡동 일원)에 있었던 옛 지명.
팔거 (八莒)
대구광역시 북구(옛 칠곡동 일원)에 있었던 옛 지명.
향리는 고려 ·조선시대에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다. 고려시대의 향리는 외관과 더불어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며, 조선의 향리는 지방 관청의 행정 실무를 담당한 하급 관인 계층이다. 향리는 나말 여초의 호족에서 기원하는데, 지방관이 파견되며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신분·역이 고정되었다. 향리층의 일부는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여 사족화하였으며 향직과 무산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고려의 향리는 읍사에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조선의 향리가 지방관의 통제 아래 행정 업무를 수행한 것과 차이가 컸다.
향리 (鄕吏)
향리는 고려 ·조선시대에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다. 고려시대의 향리는 외관과 더불어 지방 행정의 말단을 담당한 계층이며, 조선의 향리는 지방 관청의 행정 실무를 담당한 하급 관인 계층이다. 향리는 나말 여초의 호족에서 기원하는데, 지방관이 파견되며 점차 세력이 약화되고 신분·역이 고정되었다. 향리층의 일부는 과거를 통해 중앙 관료로 진출하여 사족화하였으며 향직과 무산계를 수여받기도 하였다. 고려의 향리는 읍사에서 업무를 담당하였는데, 조선의 향리가 지방관의 통제 아래 행정 업무를 수행한 것과 차이가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