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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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 인장은 194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백범 김구가 사용했던 개인 인장 3종 5과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1940년 즈음부터 1946년 봄에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서한이나 여러 문서에 사용했던 것이다. 특히 근대의 전각가 김태석이 새긴 인장이 포함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독립기념관과 백범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구 인장은 2009년 6월 26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각각 지정되었다.
백범 김구 인장 (白凡 金九 印章)
백범 김구 인장은 194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백범 김구가 사용했던 개인 인장 3종 5과이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1940년 즈음부터 1946년 봄에 제작했던 것으로 추정되며, 서한이나 여러 문서에 사용했던 것이다. 특히 근대의 전각가 김태석이 새긴 인장이 포함되어 문화재적 가치가 크다. 독립기념관과 백범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는 김구 인장은 2009년 6월 26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유산)로 각각 지정되었다.
덕온공주 동제인장은 조선 후기, 제23대 왕 순조의 셋째 공주인 덕온의 작호인이다. 동제 인장으로 "덕온공주지인" 여섯 자가 인면에 새겨져 있다. 인뉴는 사자를 얹었고, 사자의 목에 방울이 달려 있는 독특한 항태이다. 2018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미국의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낙찰받아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현전하는 몇 안 되는 공주의 작호인이며, 왕실의 의례와 공예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환수 문화유산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덕온공주 동제인장 (德溫公主 銅製印章)
덕온공주 동제인장은 조선 후기, 제23대 왕 순조의 셋째 공주인 덕온의 작호인이다. 동제 인장으로 "덕온공주지인" 여섯 자가 인면에 새겨져 있다. 인뉴는 사자를 얹었고, 사자의 목에 방울이 달려 있는 독특한 항태이다. 2018년 문화재청(현, 국가유산청)이 미국의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낙찰받아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현전하는 몇 안 되는 공주의 작호인이며, 왕실의 의례와 공예문화의 정수를 담고 있는 환수 문화유산이다. 국립고궁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문인들의 인장(印章)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한국문인인장박물관 (韓國文人印章博物館)
문인들의 인장(印章)을 모아 전시한 박물관.
남북국시대 감산사를 짓기 위하여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 연간에 중아찬 김지성이 희사한 토지 등의 재산.
감산장전 (甘山莊田)
남북국시대 감산사를 짓기 위하여 통일신라의 제33대 성덕왕 연간에 중아찬 김지성이 희사한 토지 등의 재산.
김지성은 남북국시대 상사봉어, 집사시랑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일길찬 김인장과 관소리부인의 아들이다. 6두품의 최고 관직인 중아찬에 올랐으며 67세에 집사부시랑에서 은퇴하였다. 은퇴한 뒤 경주의 전장을 희사하여 감산사를 창건하고 미륵상과 아미타상을 안치하였다. 미륵상과 아미타상의 광배에 그의 행적에 대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는 중앙 정계에서 왕의 신임을 받으며 관직 생활을 영위하였는데, 특히 성덕왕과의 관계가 각별했다. 그의 사상의 주류는 유식계의 법상종이었으나 당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던 노장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김지성 (金志誠)
김지성은 남북국시대 상사봉어, 집사시랑 등을 역임한 관리이다. 일길찬 김인장과 관소리부인의 아들이다. 6두품의 최고 관직인 중아찬에 올랐으며 67세에 집사부시랑에서 은퇴하였다. 은퇴한 뒤 경주의 전장을 희사하여 감산사를 창건하고 미륵상과 아미타상을 안치하였다. 미륵상과 아미타상의 광배에 그의 행적에 대한 명문이 새겨져 있다. 그는 중앙 정계에서 왕의 신임을 받으며 관직 생활을 영위하였는데, 특히 성덕왕과의 관계가 각별했다. 그의 사상의 주류는 유식계의 법상종이었으나 당시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귀족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던 노장사상에 심취해 있었다.
봉니는 고대 낙랑군에서 공문서를 봉함하기 위하여 묶은 노끈의 이음매에 붙이는 인장을 눌러 찍은 점토덩어리이다. 원래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기원하였는데 중국 전국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을 변조하기 쉬운 죽간과 목간을 밀봉하거나 중요한 물품의 보관과 내용물 도난을 막기 위해 이용되었다. 인장을 문서에 날인할 수 있는 종이가 개발되면서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시 남안에서 200여 점이 발견되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 활용되었다. 해방 이후 재발굴 결과,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날조한 위조품으로 판명되었다.
봉니 (封泥)
봉니는 고대 낙랑군에서 공문서를 봉함하기 위하여 묶은 노끈의 이음매에 붙이는 인장을 눌러 찍은 점토덩어리이다. 원래 고대 오리엔트 지역에서 기원하였는데 중국 전국시대에 전래된 것으로 추정된다. 내용을 변조하기 쉬운 죽간과 목간을 밀봉하거나 중요한 물품의 보관과 내용물 도난을 막기 위해 이용되었다. 인장을 문서에 날인할 수 있는 종이가 개발되면서 사용하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에 평양시 남안에서 200여 점이 발견되어 낙랑군이 평양 일대에 존재했다는 고고학적 증거로 활용되었다. 해방 이후 재발굴 결과, ‘낙랑군 평양설’을 주장하기 위하여 날조한 위조품으로 판명되었다.
우리나라 고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의 국왕 인장.
옥새 (玉璽)
우리나라 고대부터 대한제국기까지의 국왕 인장.
대한국독립협회지장은 1897년 독립협회에서 제작하여 사용하던 나무 인장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설립되어 1898년 12월 해산될 때까지 자주독립, 자주국권, 자유민권 등의 운동을 주도하였던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에서 각종 공문서 등에 사용하던 인장으로, 1897년 10월 12일에 제작하였다. 2013년 8월 27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대한국독립협회 지장 (大韓國獨立協會 之章)
대한국독립협회지장은 1897년 독립협회에서 제작하여 사용하던 나무 인장이다. 독립협회는 1896년 7월에 설립되어 1898년 12월 해산될 때까지 자주독립, 자주국권, 자유민권 등의 운동을 주도하였던 사회정치단체이다. 독립협회에서 각종 공문서 등에 사용하던 인장으로, 1897년 10월 12일에 제작하였다. 2013년 8월 27일 국가등록문화재(현, 국가등록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연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