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40년대 초반부터 중반까지 백범 김구가 사용했던 개인 인장 3종 5과.
내용
'김구지인(金九之印)' 인장의 재료는 황색 옥석(玉石)이며 크기는 가로18㎜, 세로18㎜, 높이 50㎜이다. 인면에는 음각으로 네 글자를 새겼고, 손잡이에 구름무늬가 새겨져 있다. 중국에서 활동하던 1940년 즈음부터 1945년 11월 귀국 시까지 이 인장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중국 정부의 주요 인사에게 보낸 서한 대부분에 이 인장이 찍혀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다.
인장이 찍힌 문서의 시점을 기준으로 대략 1940년 즈음 제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천안의 독립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김구(金九)' 인장의 재료는 황색 납석으로 크기는 가로 16㎜, 세로 16㎜, 높이 45㎜이다.
인면에는 양각으로두 글자를 새겼고, 위쪽에 해치가 새겨져 있다. 광복과 더불어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 이 인장을 주로 사용하였으며, 1946년경에 김상정, 정인보에게 보낸 명함과 안창호에게 보낸 사진 등에 이 인장이 찍혀 있어 자료적 가치가 크다. 인장이 찍힌 문서를 기준으로 대략 1945년 즈음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관화(寬和)' · '김구지인(金九之印)' · '백범(白凡)' 3과로 구성된 한 조의 인장으로, 각각 두인(頭印), 성명인(姓名印), 아호인(雅號印)이다. 크기는 각각 가로, 세로, 높이 기준으로 15×30×60㎜, 32×32×60㎜, 32×32×55㎜이다.
검은 옥석에 연잎무늬가 새겨져 있고 인장의 측면에 ‘성재작(惺齋作)’, ‘병신중춘성재방고(丙戌仲春惺齋仿古)’라는 측관이 새겨져 있어 근대기의 전각가 성재(惺齋) 김태석(金台錫)이 1946년 봄에 새긴 인장임을 알 수 있다. 백범이 주로 글씨를 쓸 때 사용했던 것으로 1945년 11월 중국에서 귀국한 이후에 쓴 유묵의 대부분에 이 인장이 찍혀 있어 자료적 가치가 높다. 현재 서울특별시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변천 사항
의의 및 평가
참고문헌
웹페이지
-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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