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속리산 법주사에는 선조 어필 고시(古詩) 8폭 1병과, 영조의 어필로 추정되는 무일편(無逸篇) 10폭 1병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들은 1785년(영조 34)년에 영조가 법주사에 하사하면서 전래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와 관련한 정확한 기록은 발견되지 않고 있다. 다만 선조는 법주사의 부속 암자인 중사자암(中獅子菴)을 즐겨 찾았으며, 암자 남쪽에 원당(願堂)을 짓고 곡식 등을 하사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총 8폭의 병풍으로 내용은 오언절구 네 수를 썼다. 12폭은 작자를 알 수 없는 매화시 1수, 34폭은 이백의 ‘추포가(秋浦歌)’ 17수 중 한 수, 56폭은 작자 미상의 오언절구, 78폭은 두보의 '춘일억이백(春日憶李白)'의 일부이다. 이러한 구성은 얼핏 보아 평범한 고시 네 수를 초서로 쓴 것으로 보일 뿐이지만, 실제로 조정에 내우외환이 많았던 선조의 입장을 미루어 지조와 덕을 겸비한 군자의 출현을 기다리는 선조의 소망이 기승전결의 형태로 짜여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 병풍은 목판에 글자를 거꾸로 새겨 양각한 것을 인출하여 제작하였다. 모두 8폭으로 폭당 가로 67㎝, 세로 190㎝이다. 병풍 제 1폭의 우측 상단에는 전자(篆字)로 "선조대왕어필(宣祖大王御筆)"이라 표기하여 선조의 어필임을 표시하였다. 총 글자 수는 80자이며, 서체는 초서 가운데서도 점획의 연결이 많은 연면초(連綿草)에 해당한다. 선조의 유창호방(流暢豪放)한 초서풍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조선 중기의 목판 인쇄 문화와 어필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며, 서화 등 예술 방면에 뛰어났던 선조의 초서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작품으로 평가된다. 2004년 7월 9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