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 초서 병풍 ( )

서예
작품
국가유산
조선 중기, 신사임당이 당시(唐詩) 오언절구를 초서로 쓴 6폭 병풍.
작품/서화
작가
신사임당
소장처
율곡기념관
시도문화유산
지정 명칭
신사임당초서병풍(申師任堂草書屛風)
분류
기록유산/서간류/서예/서예
지정기관
강원특별자치도
종목
강원특별자치도 시도유형문화유산(1973년 07월 31일 지정)
소재지
강원 강릉시 율곡로3139번길 24 (죽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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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사임당초서병풍」은 조선 중기, 신사임당이 당시(唐詩) 오언절구를 초서로 쓴 6폭 병풍이다. 단정한 점획, 긴밀한 짜임, 곡선과 직선의 원만한 조화 등이 돋보이는 신사임당의 전형적 초서이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강릉시 오죽헌 율곡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정의
조선 중기, 신사임당이 당시(唐詩) 오언절구를 초서로 쓴 6폭 병풍.
제작 배경

신사임당(申師任堂)이 당시(唐詩) 오언절구를 초서로 쓴 것을 6폭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병풍 말미의 2폭에는 강릉부사 이형규(李亨逵)의 1744년(영조 50) 발문, 강원도지사 이용(李龍)의 1963년 발문, 시인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의 1971년 발문이 있다.

내용

총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사임당이 초서로 쓴 당시 여섯 수가 제1폭~제6폭을 이루며, 병풍 말미의 2폭 중 제7폭은 강릉부사로 재직했던 이형규의 1774년 발문이, 제8폭은 강원도지사 이용의 1963년 발문과 이은상의 1971년 발문이 장황되어 있다.

강릉부사 이형규의 발문에는 이 병풍이 전하여 오게 된 연유와 곡절이 상세히 적혀있다. 이형규의 발문에 따르면, 사임당의 넷째 여동생의 아들인 권처균(權處均)이 초서 6폭을 얻었는데, 그의 딸이 최대해(崔大海)에게 시집갈 때 가지고 갔다고 한다. 영조 때 이웃 고을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당시의 강릉부사 이형규의 주선으로 도로 찾게 되었다.

이후 강릉시 두산동 최돈길(崔燉吉)의 집에 전해지던 것을 1971년에 강릉시가 인도받아 율곡기념관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형태 및 특징

세로 44.2㎝, 가로 33.5㎝ 크기의 닥나무 종이에 당시 오언절구 6수를 초서로 쓴 형태이다. 단정한 점획, 긴밀한 짜임, 곡선과 직선의 원만한 조화 등이 돋보이는 신사임당의 전형적 초서이다. 또한 자형이 명료하고, 결구가 단정하여 초서이지만 해서와 같은 차분한 서풍을 보인다.

의의 및 평가

16세기 초서풍의 한 계통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신사임당의 완성도 높은 초서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율곡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웹페이지

디지털강릉문화대전(http://gangneung.grandculture.net)
국가유산청 국가문화유산포털(https://www.heritage.go.kr/heri/idx/index.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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