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사임당초서병풍」은 조선 중기, 신사임당이 당시(唐詩) 오언절구를 초서로 쓴 6폭 병풍이다. 단정한 점획, 긴밀한 짜임, 곡선과 직선의 원만한 조화 등이 돋보이는 신사임당의 전형적 초서이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강릉시 오죽헌 율곡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
신사임당(申師任堂)이 당시(唐詩) 오언절구를 초서로 쓴 것을 6폭 병풍으로 꾸민 것이다. 병풍 말미의 2폭에는 강릉부사 이형규(李亨逵)의 1744년(영조 50) 발문, 강원도지사 이용(李龍)의 1963년 발문, 시인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의 1971년 발문이 있다.
총 8폭으로 구성되어 있다. 신사임당이 초서로 쓴 당시 여섯 수가 제1폭~제6폭을 이루며, 병풍 말미의 2폭 중 제7폭은 강릉부사로 재직했던 이형규의 1774년 발문이, 제8폭은 강원도지사 이용의 1963년 발문과 이은상의 1971년 발문이 장황되어 있다.
강릉부사 이형규의 발문에는 이 병풍이 전하여 오게 된 연유와 곡절이 상세히 적혀있다. 이형규의 발문에 따르면, 사임당의 넷째 여동생의 아들인 권처균(權處均)이 초서 6폭을 얻었는데, 그의 딸이 최대해(崔大海)에게 시집갈 때 가지고 갔다고 한다. 영조 때 이웃 고을 사람에게 넘어간 것을 당시의 강릉부사 이형규의 주선으로 도로 찾게 되었다.
이후 강릉시 두산동 최돈길(崔燉吉)의 집에 전해지던 것을 1971년에 강릉시가 인도받아 율곡기념관에서 보관하게 되었다.
16세기 초서풍의 한 계통을 열었다고 평가되는 신사임당의 완성도 높은 초서풍을 확인할 수 있는 작품이다. 1973년 7월 31일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고, 강원도 강릉시 오죽헌 율곡기념관에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