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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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임나 (任那)
임나란 가야 혹은 금관가야를 달리 부르는 이름이다. 특히, 김해의 금관가야를 칭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역사 기록에서는 3곳에서 '임나'라는 표현이 확인된다. 「광개토왕릉비문」에서는 '임나가라', 「봉림사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문」에는 '임나왕족', 『삼국사기』 열전 강수열전에서는 '임나가량'이라는 표현이 쓰였다. 임나는 중국과 일본의 문헌에서도 확인되며, 『일본서기』에서는 임나와 함께 '임나일본부'라는 표현도 다수 쓰였다.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경 일본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로 출정해 가야와 그 주변을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였고, 이후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즉, 일본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2세기에 걸쳐 경영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어휘를 임나, 즉 가야를 경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통치기구라고 해석한다.
임나일본부설 (任那日本府說)
임나일본부설은 4세기 중엽경 일본열도의 왜가 한반도 남부로 출정해 가야와 그 주변을 정벌한 다음 '임나일본부'라는 통치기관을 설치하였고, 이후 562년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학설이다. 즉, 일본 관학자들을 중심으로 고대의 왜가 한반도 남부지역을 2세기에 걸쳐 경영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 설의 근거는 『일본서기』에 등장하는 '임나일본부'라는 표현이다.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 논자들은 임나일본부라는 어휘를 임나, 즉 가야를 경영하기 위해 만들어진 일본의 통치기구라고 해석한다.
삼국시대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신.
가마 (歌麻)
삼국시대 때, 백제에서 일본으로 파견된 사신.
모루(牟婁)는 512년(백제 무령왕 12), 백제가 가야(임나)에서 빼앗은 '임나4현(任那四縣)'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광양으로 비정된다. 백제 때 광양의 지명이 마로(馬老)라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임나4현은 『일본서기(日本書紀)』 계체기(繼體紀) 6년(512년)조에 보이는 지명으로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娑陀), 모루(牟婁) 등이다.
모루 (牟婁)
모루(牟婁)는 512년(백제 무령왕 12), 백제가 가야(임나)에서 빼앗은 '임나4현(任那四縣)' 가운데 하나로 전라남도 광양으로 비정된다. 백제 때 광양의 지명이 마로(馬老)라는 점에서도 뒷받침된다. 임나4현은 『일본서기(日本書紀)』 계체기(繼體紀) 6년(512년)조에 보이는 지명으로 상다리(上哆唎), 하다리(下哆唎), 사타(娑陀), 모루(牟婁) 등이다.
삼국시대 백제의 나솔, 덕솔 등을 역임한 관리.
비리막고 (鼻利莫古)
삼국시대 백제의 나솔, 덕솔 등을 역임한 관리.
삼국시대 백제의 사신으로 가야에 파견된 장수.
목례마나 (木刕麻那)
삼국시대 백제의 사신으로 가야에 파견된 장수.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
대가야 (大加耶)
가야연맹체(加耶聯盟體)의 한 나라로서 후기 가야연맹체의 맹주국.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1∼523년이며,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무령왕 (武寧王)
무령왕은 삼국시대 백제의 제25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501∼523년이며, 위사좌평 백가가 보낸 자객에 의해 동성왕이 시해되자 그를 이어 즉위했다. 북방정책에 몰두하여 고구려·말갈 등의 침략을 무찌르고 대비책을 강화했으며, 중국 남조의 양과 관계를 강화하는 외교정책을 폈다. 지배귀족들의 전횡을 막고자 좌평제를 폐지하고 22부사제로 행정체제를 바꾸었고, 백성들의 진휼에 힘쓰는 한편 수리시설 정비·확충과 호적체계 정비로 안정적 국가 운영의 토대를 마련했다. 한강 유역을 고구려에 빼앗긴 후 혼란에 빠진 백제를 안정시킨 왕으로 평가된다.
1906년 국민교육회에서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대동역사략 (大東歷史略)
1906년 국민교육회에서 초등학교의 역사 교육을 위하여 편찬한 교과서.
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사타 (娑陀)
사타는 삼국시대, 『일본서기』에 기록된 임나 4현 가운데 한 곳이다. 실제는 백제가 대가야로부터 수복한 영토 가운데 일부일 가능성이 있다. 정확한 위치는 알기 어려우나 섬진강 일대로 보는 견해가 많으며 순천으로 특정하기도 한다.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백강구전투 (百江口戰鬪)
660년 백제가 멸망한 뒤 백제부흥군이 주체가 되어, 일본의 지원병과 합세해 나당연합군(羅唐聯合軍)과 벌였던 국제적인 싸움.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김석형 (金錫亨)
김석형은 해방 이후 「리조병제사」, 「조선통사」, 「초기 조일관계 연구」 등을 저술한 역사학자이다. 1915년에 대구에서 태어나 1996년에 사망했다. 1940년 경성제국대학 조선사학과를 졸업했다.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수감되었다가 석방되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 역사교육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공산당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46년 월북하여 김일성종합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취임했다. 북한에서 한국고대사 연구에 전념하며 북한 역사학 정립에 기여했다. 특히 주체사관에 입각하여 역사를 체계화하는 작업을 주도하였다.
가야연맹의 소국.
염례국 (稔禮國)
가야연맹의 소국.
삼국시대 때, 나마에 임명된 신라의 관리.
석체 (昔諦)
삼국시대 때, 나마에 임명된 신라의 관리.
삼국시대 백제의 군신회의의 수석인 상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사택기루 (沙宅己婁)
삼국시대 백제의 군신회의의 수석인 상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삼국시대 백제의 고위 관등인 하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
목윤귀 (木尹貴)
삼국시대 백제의 고위 관등인 하좌평을 역임한 관리. 대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