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재령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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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령평야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 걸친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평야이다. 황해도의 황주·봉산·재령·신천·안악 등 5개 군에 걸쳐 있는 평야로 나무리[南勿里]벌이라고도 하는데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라는 의미이다. 재령강 등 유수에 의한 퇴적으로 육지가 된 충적평야로서 만조 시에는 저습지로 변하는 곳도 있다. 조선 인조 때 개간을 시작해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조성하였다. 1926년에 안녕수리조합과 재신수리조합 등이 설립되면서 곡창지대로 발전하였다. 신환포와 남포 사이에 항로가 있고 해주선과 장연선이 연결되어 철도교통도 편리하다.
재령평야 (載寧平野)
재령평야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 걸친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평야이다. 황해도의 황주·봉산·재령·신천·안악 등 5개 군에 걸쳐 있는 평야로 나무리[南勿里]벌이라고도 하는데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라는 의미이다. 재령강 등 유수에 의한 퇴적으로 육지가 된 충적평야로서 만조 시에는 저습지로 변하는 곳도 있다. 조선 인조 때 개간을 시작해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조성하였다. 1926년에 안녕수리조합과 재신수리조합 등이 설립되면서 곡창지대로 발전하였다. 신환포와 남포 사이에 항로가 있고 해주선과 장연선이 연결되어 철도교통도 편리하다.
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재령광산 (載寧鑛山)
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재령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재령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강계 내용을 건치연혁 항목에 포함하고 있는 점이나, 기우제소와 서원 관련 항목을 별도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19세기 말 재령군의 행정·경제·군사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재령군읍지 (載寧郡邑誌)
『재령군읍지』는 1899년 황해도 재령군의 연혁, 인문지리, 행정 등을 수록하여 편찬한 읍지이다. 1책의 필사본이며,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 도서이다. 강계 내용을 건치연혁 항목에 포함하고 있는 점이나, 기우제소와 서원 관련 항목을 별도로 구성한 점이 특징이다. 19세기 말 재령군의 행정·경제·군사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재령언답응하개수정절목은 1852년 명례궁에서 황해도 재령군 소재 장토의 수조 원칙을 규정한 조목이다. 이 장토는 재령강 연안 간척지에 설치되었다. 서두에서 수조 방식을 정액제로 변경한다는 절목 시행 취지를 밝힌 뒤, 18개 항목에 걸쳐 수조 및 장토 관리직의 명칭과 인원, 역할 등을 기재하였다. 조선 후기 궁방전 경영 및 간척지 관리 방식 등을 보여주는 자료로 의의가 있다.
재령언답응하개수정절목 (載寧堰畓應下改修定節目)
재령언답응하개수정절목은 1852년 명례궁에서 황해도 재령군 소재 장토의 수조 원칙을 규정한 조목이다. 이 장토는 재령강 연안 간척지에 설치되었다. 서두에서 수조 방식을 정액제로 변경한다는 절목 시행 취지를 밝힌 뒤, 18개 항목에 걸쳐 수조 및 장토 관리직의 명칭과 인원, 역할 등을 기재하였다. 조선 후기 궁방전 경영 및 간척지 관리 방식 등을 보여주는 자료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