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8장의 한문 초서체 필사본.
내용은 황해도 재령군 소재 250섬지[石落]에서 수봉미(收捧米) 2,928석에 대한 경비의 내용과 실수봉미의 수량을 규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금의 덕수궁을 1623년(인조 1) 인조반정 직후 한때 명례궁으로 불렸다. 명례궁 시절에는 왕자 또는 공주들이 이 곳에 거처하였으며, 명례궁의 운영을 위하여 재령에 장토(庄土)를 두었다.
이 절목은 절목제정의 내력과 21개 조항의 절목, 그리고 당상관의 수결(手決)로 구성되어 있다. 전문(前文)의 내용은 “재령 여물평(餘勿坪)에 있는 14개 저수지의 몽리답 250섬지기에서 생산되는 수량의 4분의 1에 해당되는 2,928석의 수봉미는 한정되어 있는데, 중간에 쓰임새는 절도가 없어 명례궁의 실질소득이 줄어듦으로 중론(衆論)을 들어 절목을 다음과 같이 개정한다.”는 요지로 되어 있다.
총 2,928석 중 수용잡비로 관리에게 주는 역가조(役價租) 249석, 궁감(宮監)의 현지출장에 소요되는 예하조(例下租) 등 100석, 궁차원(宮差員) 3인의 예하조 130석, 도감관(都監官)의 원료(元料) 등 120석, 서사감관(書寫監官) 2인의 요하조(料下租) 40석 등 총계 1,104석 6두를 공제한 나머지 1,823석 11두를 실상납정조(實上納正租)로 할 것이라 규정하고 있다. 또한 경비축소를 위한 관리층의 겸직과 기강쇄신을 위한 벌칙강화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이 자료는 명례궁 관계 각종 절목들로 이루어진 규장각 도서 24책 중의 하나로 조선 후기의 궁방전의 경영상태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될 것이다. 이 수봉미를 역산(逆算)하게 되면 당시의 토지생산력과 소작료 등을 추정할 수 있고, 조선 후기의 토지제도 등을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될 것이다. 규장각도서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