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령광산은 황해도 재령군 재령읍과 삼강면에 걸쳐 있는 철광산이다. 고려시대부터 유명한 광산으로,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된 규모가 큰 철광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미쓰비시광업이 관리하였으며, 생산된 철은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초기에는 노천채굴 방식이었으나, 깊이가 깊어지면서 트럭 리프트 시스템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였다. 재령광산은 북한의 주요 철광산 중 하나로, 해방 이후부터는 생산된 철광석을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고 있다. 북한에서 재령광산은 규모 면에서 무산광산, 풍산광산, 단천광산, 은율광산 다음으로 크다.
고려시대부터 황해도 재령군 지역의 하천 중간에서 나오는 철이 재령수철(載寧水鉄)로 유명하고, 농기구 및 일상용 철기를 주조하는 원광으로 사용되었다. 고려시대의 대표적인 광산은 함경북도 회령, 황해도 은율 · 재령, 충청북도 충주로 꼽혔으니 재령광산의 개발 역사는 오래되었다. 재령광산은 1907년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되었다. 1907년 1월 다카시마탄광[高島炭鉱]의 나카이[中井]로부터 유명한 재령수철로 불렸으며, 같은 해 4월 궁내부의 위임을 받아 탐광을 시작하였다. 여기서 생산된 광석은 일본 근대산업의 요람이자 군수산업의 중심지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에 있는 야하타제철소[八幡製鉄所]로 보냈다.
1910년 1월, 재령광산은 일본 정부에 이양되어 상공성(商工省)의 관할이 되었다. 등록번호 제534호로, 상공성이 광업권자인 재령광산의 면적은 2.01㎢에 달하였다. 1917년 광업권은 농상무성(農商務省)이 가졌으며 채광은 전부 노천굴에서 하였고 선광은 수작업으로 진행하였다. 야하타제철소까지 수송 과정을 보면 ‘현장재령강반(載寧江畔) 구간’은 경사 철도를 이용하여 인력으로 운반하였고, ‘재령강반일본의 야하타제철소 구간’은 배로 수송하였다. 1930년 무렵에 미쓰비시광업주식회사[三菱鉱業株式會社]가 탐굴을 위임받았으며, 광석은 계속해서 야하타제철소로 보냈다.
재령광산의 교통은 경의선 사리원역에서 남서쪽으로 981.81m 떨어져 있으며, 가장 가까운 역은 본산 동쪽으로 392.72m 거리에 있는 사리원역이다. 조선철도주식회사 황해선을 이용할 수 있으며, 서안(西岸) 청룡리에는 기선 정박장이 있어 배편으로 서안에 도달할 수 있다. 지질은 편마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있으며, 대동층 및 충적층이 쌓인 구릉지대이다. 광구의 서쪽 끝에는 편마암이 노출되어 있다. 재령광산에서 캐낸 광석을 운반하기 위해 대형 자재를 적재 및 운반할 수 있는 적재용 탱크를 설치하고, 전용 철길을 설치하여 광석 운반에 사용하였다.
노천채굴을 하던 재령광산은 광산이 깊어지면서 깔때기 모양을 형성하는데, 트럭이 가파른 경사면의 먼 거리를 이동해야 하므로 많은 연료와 시간이 소비되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재령광산은 적재된 트럭을 구덩이 바닥에서 표면으로 빠르게 들어 올릴 수 있는 경사 호이스팅 시스템인 트럭 리프트(truck lift) 시스템을 도입하였다. 높이 차이를 이용한 경사 호이스트 시스템은 깊은 채굴로 인해 발생하는 운송 비용을 줄였다.
재령광산의 철 중 상당 부분은 북한의 4대 철강 기업소로 꼽히는 황해제철기업소로 보내진다. 각 광산의 매장량이나 처리량으로 볼 때, 가장 큰 철광은 무산광산이며, 그다음이 풍산광산 · 단천광산 · 은율광산 · 재령광산 순이다. 한편, 2009년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재령광산을 방문하여 “재령광산의 광부들이 질 좋은 쇳돌을 제철소에 보내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라고 칭찬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