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고려시대 중기에 재령 무쇠[水鐵]가 농구와 일용철기를 주조하는 원광으로 쓰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1907년에 대한제국 궁내부 소관으로 개발되었으며, 그 해 4월에 일본인 니시자키(西崎鶴太郎)가 궁내부의 위임을 받아 채광하여 일본의 야와타제철소(八幡製鐵所)에 보냈다. 1910년 일본정부에 이양되어 상공성의 소관으로 가동되다가 오늘에 이르렀다.
광산의 지질은 편마암을 기반암으로 하고, 대동층(大同層)과 충적층이 퇴적한 구릉지인 광구의 서쪽 끝에 편마암이 노출된 곳에 있다. 대동층은 혈암·사암 등의 누층으로 이루어졌으며, 이에 편두상(扁豆狀)을 한 규암·석회암 및 철광상이 부존되어 있다.
광상은 사암과 석회암의 작은 덩어리를 낀 혈암층 및 사암·혈암의 호층(互層) 속에 있으며, 부근 지표의 진흙 속에는 광력(鑛礫)이 다량으로 함유되어 있다. 주요광맥의 하나는 길이가 1,300m에 이르고, 너비가 가장 큰 곳은 800m를 넘는 것이 있다.
광석은 석영을 수반하는 갈철광(褐鐵鑛)과 적철광으로 이루어졌으며, 대체로 다공질(多孔質)을 이루고 정석의 품위는 약 50%의 부광이다. 이들은 대부분 노천굴(露天掘)로 채굴되고, 재령강의 수운을 이용하여 송림제철소로 보내졌다. 1일 산철량은 350t 가량으로 연산 10만t 내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