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재령평야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 걸친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평야이다. 황해도의 황주·봉산·재령·신천·안악 등 5개 군에 걸쳐 있는 평야로 나무리[南勿里]벌이라고도 하는데 “먹고 입고 쓰고도 남는다.”라는 의미이다. 재령강 등 유수에 의한 퇴적으로 육지가 된 충적평야로서 만조 시에는 저습지로 변하는 곳도 있다. 조선 인조 때 개간을 시작해 제방을 쌓아 농경지를 조성하였다. 1926년에 안녕수리조합과 재신수리조합 등이 설립되면서 곡창지대로 발전하였다. 신환포와 남포 사이에 항로가 있고 해주선과 장연선이 연결되어 철도교통도 편리하다.
정의
황해남도와 황해북도에 걸친 재령강 유역에 발달한 평야.
개설
자연환경
재령평야는 삼면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고 기온의 연교차가 크다. 연평균기온은 10℃ 내외, 1월 평균기온은 –5℃ 내외, 8월 평균기온은 24℃ 내외이다. 연강수량은 900㎜ 내외로 우리나라 3대 소우지(小雨地) 중 하나이다.
형성 및 변천
재령평야의 지형적 특징은 유적, 전설, 지명 등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지명 중에는 물 · 바다 · 호수 · 포구(浦口)와 물에 사는 동식물과 관련된 것이 많다. 삼강면 · 청천면 · 서호면을 비롯하여 삼강면의 청룡리 · 상해리 · 용소리 · 용교리 · 학교리, 하성면의 용호리, 서호면의 신환포리 · 신호리 · 작도리 등이 좋은 예이다.
현황
재령평야의 쌀은 예로부터 왕실의 진상미(進上米)로 유명하였고, 쌀알이 길고 커서 품질이 우수한 쌀로 인정받았다. 이 밖에도 재령평야의 농산물로는 사과 · 채소 등이 있다.
철광석도 재령평야의 중요한 산물이었다. 재령평야의 대표적 광산인 금산광산(金山鑛山)은 노천광(露天鑛)으로 수철광산(水鐵鑛山)이라고 불렸는데, 이곳에서는 고려 중기부터 철광석이 채굴되어 농구와 일반 생활용구의 제작에 널리 사용되었다. 금산광산에서 생산된 철광석은 재령강의 수로를 거쳐 송림제철소나 일본으로 수송되었다.
재령평야에는 신환포와 남포 사이에 정기항로가 있어 수운(水運)이 편리하였다. 또 평야를 남북으로 관통하여 해주에 이르는 해주선과 동서로 횡단하여 장연에 이르는 장연선이 다른 지방과 연결되어 철도교통도 편리하였다. 도시는 재령을 중심으로 동쪽의 사리원, 서쪽의 안악, 남쪽의 신천 등이 형성되어 있다.
재령평야는 망망대해(茫茫大海)를 연상하게 하는 여름의 푸른 물결과 황금만파(黃金萬波)를 이루는 가을의누런 물결이 장관이다. 경승지로 알려진 장수산은 산성(山城) · 석동십이곡(石洞十二曲) · 묘음사(妙音寺) · 현암(懸庵) 등의 고적이 많다. 한편 장수면에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난을 갔던 선조가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비를 만나 묵었다는 어실(御室)의 옛터와 태자가 묵었다는 태자원(太子院)이 남아 있다.
참고문헌
- 『택리지(擇里誌)』
- 『황해도지』(황해도지편찬위원회, 1982)
- 기상청(km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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