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정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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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에, 학문이 넓고 의술에도 뛰어나 조정에 불러졌지만 나아가지 않았으며, 사후에 사헌부지평으로 증직된 학자.
박유연 (朴由淵)
조선 후기에, 학문이 넓고 의술에도 뛰어나 조정에 불러졌지만 나아가지 않았으며, 사후에 사헌부지평으로 증직된 학자.
조선후기 문신 허목이 전국의 목장 소재지를 그려 넣은 지도집. 지도첩.
목장지도 (牧場地圖)
조선후기 문신 허목이 전국의 목장 소재지를 그려 넣은 지도집. 지도첩.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이숙 (李䎘)
조선 후기에, 대사간, 이조판서, 우의정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 후기에, 승지, 이조참의,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이시술 (李時術)
조선 후기에, 승지, 이조참의, 이조참판 등을 역임한 문신.
조선후기 포도대장, 총융사, 수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이여발 (李汝發)
조선후기 포도대장, 총융사, 수원부사 등을 역임한 무신.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기해예송 (己亥禮訟)
기해예송은 1659년(현종 즉위) 효종이 죽자 계모였던 자의대비가 입을 상복의 종류를 두고 일어났던 서인과 남인의 예절에 관한 논쟁이다. 이 논쟁은 효종이 인조의 맏아들이 아닌 둘째 아들이었기 때문에 발생하였다. 서인은 효종을 둘째로 인식하여 일 년을 입는 기년복을 주장하였고, 남인은 효종이 왕위를 계승했기 때문에 장자에 해당한다고 하여 삼년복을 주장하였다. 논의 끝에 기년복이 채택되었는데, 남인 윤선도가 서인들의 기년설을 ‘효종을 낮추고 종통과 적통을 이분화’한 것이라고 공격하였다. 이에 서인들이 윤선도를 탄핵하고 예송에 가담한 남인들을 조정에서 축출하고 정권을 독점하였다.
조선후기 숭록대부의 위계에 올라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역관.
홍희남 (洪喜男)
조선후기 숭록대부의 위계에 올라 지중추부사를 역임한 역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