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명연합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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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홍립은 조선시대 한성부우윤, 순검사, 오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7년(인조 5)에 사망했다. 159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다. 광해군 재임시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해 원병을 요청하자 오도원수로서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연합군이 대패하자 후금에 투항했다.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광해군의 밀명에 따른 것이었다.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선도로서 입국해 화의를 주선한 뒤 국내에 머물렀다. 역신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했다가 사후에 복관되었다.
강홍립 (姜弘立)
강홍립은 조선시대 한성부우윤, 순검사, 오도원수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560년(명종 15)에 태어나 1627년(인조 5)에 사망했다. 1597년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관직을 시작했다. 광해군 재임시 명이 후금을 치기 위해 원병을 요청하자 오도원수로서 군사를 이끌고 출병했으나 연합군이 대패하자 후금에 투항했다. ‘형세를 보아 향배를 정하라’는 광해군의 밀명에 따른 것이었다. 포로로 억류되었다가 정묘호란 때 후금군의 선도로서 입국해 화의를 주선한 뒤 국내에 머물렀다. 역신으로 몰려 관직을 삭탈당했다가 사후에 복관되었다.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6,000명을 동원하여 40여 일만에 쌓은 왜성이다. 서쪽으로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 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東川)과 이어진 반구정(伴鷗亭)의 구릉지 등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이곳에서 왜군과 조 · 명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울산왜성 (蔚山倭城)
울산왜성(蔚山倭城)은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왜장 가토 기요마사가 울산시 중구 학성동에 쌓은 왜성이다. 1597년(선조 30)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가 설계하고, 아사노 유키나가[淺野幸長]가 16,000명을 동원하여 40여 일만에 쌓은 왜성이다. 서쪽으로 언양 방면의 방어를 위한 태화루 부근, 북쪽으로 경주 방면의 방어를 위한 학성산의 성황당, 동쪽으로 동천(東川)과 이어진 반구정(伴鷗亭)의 구릉지 등에 지성(支城)이 있었다. 1597년 12월과 1598년 9월 사이 이곳에서 왜군과 조 · 명연합군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