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민주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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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7·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
고흥문 (高興門)
제6·7·8·9·10대 국회의원을 역임한 정치인.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덕흥교회 장로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이명룡 (李明龍)
일제강점기 때,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으로, 덕흥교회 장로 등을 역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부회장, 함흥중앙교회 장로, 동아일보 함흥지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함흥의 독립만세시위와 함흥헌병대 의거를 주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이순기 (李舜基)
일제강점기 때, 신간회 부회장, 함흥중앙교회 장로, 동아일보 함흥지국장 등을 역임하였으며, 함흥의 독립만세시위와 함흥헌병대 의거를 주도한 개신교인·독립운동가.
일제강점기 때, 동아일보 정주지국장, 임시정부 연락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선우훈 (鮮于燻)
일제강점기 때, 동아일보 정주지국장, 임시정부 연락원 등으로 활동한 독립운동가.
이윤영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의 신창교회, 황해도 배천교회, 평양의 남산현 교회 등에서 목회를 한 목사, 교육자, 정치인이다. 1890년 평안북도 영변군 출생으로 1913년 서울의 협성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해 1916년 목사가 되었다. 1919년 신창교회 목사로 독립선언강연회를 개최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목사 파면 처분을 받았다. 1946년 이승만의 정치노선을 지지했던 민족통일총본부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이윤영 (李允榮)
이윤영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순천의 신창교회, 황해도 배천교회, 평양의 남산현 교회 등에서 목회를 한 목사, 교육자, 정치인이다. 1890년 평안북도 영변군 출생으로 1913년 서울의 협성신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해 1916년 목사가 되었다. 1919년 신창교회 목사로 독립선언강연회를 개최하고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1년 2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조선총독부의 압력으로 목사 파면 처분을 받았다. 1946년 이승만의 정치노선을 지지했던 민족통일총본부에 참여하였으며, 1948년 제헌국회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었다.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
조만식 (曺晩植)
조만식은 일제강점기 조선물산장려회 회장, 신간회회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정치인이다. 1883년 평안남도 강서 출생으로 23세에 평양 숭실중학에 입학하면서 기독교에 입교하였다. 1908년 일본 동경 유학 중 간디의 무저항주의에 심취한 후 일제에 대항하는 이념으로 삼았다. 귀국 후 오산학교의 교사와 교장을 역임하였으며, 3·1운동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22년 조선물산장려회를 조직해 국산품애용운동을 벌였으며, 1932년 조선일보사 사장에 추대되었다. 1970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에 추서되었으며, 어린이대공원과 오두산통일전만대에 동상이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