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선방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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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방직사건은 1951년 4월 귀속재산이었던 조선방직의 경영진이 고의로 불량 소재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이래, 1952년 3월 조선방직 파업이 종결될 때까지 조선방직회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이다. 해방 후 일제의 적산 중 최대 방직공장이던 조선방직을 불하받을 유력 인물이 야당 국회의원 김지태였는데, 이승만 정부는 경영진을 구속하고 불하를 취소한 후 이승만의 심복 강일매로 하여금 경영권을 장악하게 하였고, 이에 반발하는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항의를 진압하였다. 그리고 조선방직은 이승만의 정치적 물질적 기반이 되었다.
조선방직사건 (朝鮮紡織事件)
조선방직사건은 1951년 4월 귀속재산이었던 조선방직의 경영진이 고의로 불량 소재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구속된 이래, 1952년 3월 조선방직 파업이 종결될 때까지 조선방직회사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일련의 사건이다. 해방 후 일제의 적산 중 최대 방직공장이던 조선방직을 불하받을 유력 인물이 야당 국회의원 김지태였는데, 이승만 정부는 경영진을 구속하고 불하를 취소한 후 이승만의 심복 강일매로 하여금 경영권을 장악하게 하였고, 이에 반발하는 조선방직 노동자들의 항의를 진압하였다. 그리고 조선방직은 이승만의 정치적 물질적 기반이 되었다.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
전진한 (錢鎭漢)
전진한은 해방 이후 초대 사회부장관, 민정당 부총재 등을 역임한 정치인, 사회운동가이다. 1901년 경북 문경 출생으로 서울로 상경해 고학 중 1920년 기미육영회의 동경유학생으로 선발되었다. 유학시절인 1926년 동지들과 ‘협동조합운동사’를 만들어 항일운동, 노동운동, 협동조합운동, 대중운동의 발판을 삼았다. 1948년 제헌국회의원에 당선된 후 초대 사회부장관을 지냈다. 5차례의 국회의원을 지내면서 민정당 부총재, 민중당 지도위원 등을 지냈으며, 통일문제에 관심을 쏟았다. 1967년 대통령 선거에 입후보하였으며, 1972년 4월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