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조형"
검색결과 총 13건
해방 이후 「조난」·「걸인」·「송아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이쾌대 (李快大)
해방 이후 「조난」·「걸인」·「송아지」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일제강점기 때, 연극과 미술 분야를 아우르며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을 주도하다가 제2차 프로예맹 검거 때 투옥된 미술인·연극인.
이상춘 (李相春)
일제강점기 때, 연극과 미술 분야를 아우르며 프롤레타리아 문예운동을 주도하다가 제2차 프로예맹 검거 때 투옥된 미술인·연극인.
해방 이후 『벽』, 『불안한 토요일』, 『시사시대』 등을 저술한 시인. 비평가.
김종문 (金宗文)
해방 이후 『벽』, 『불안한 토요일』, 『시사시대』 등을 저술한 시인. 비평가.
원삼국시대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제작된 동물형상의 토기.
동물형토기 (動物形土器)
원삼국시대 후기에서 삼국시대에 걸쳐 제작된 동물형상의 토기.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에 있는 사립 전문대학.
계원예술대학교 (桂園藝術大學校)
경기도 의왕시 내손동에 있는 사립 전문대학.
해방 이후 「외로운 여인들」·「아름다운 계절의 풍경들」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박일주 (朴一舟)
해방 이후 「외로운 여인들」·「아름다운 계절의 풍경들」 등의 작품을 그린 화가.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미술단체.
조선미술동맹 (朝鮮美術同盟)
해방공간에서 활동한 미술단체.
해방 이후 「곽낙원여사상」, 「성관음상」, 「농민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공예가.
박승구 (朴勝龜)
해방 이후 「곽낙원여사상」, 「성관음상」, 「농민군상」 등의 작품을 낸 조각가. 공예가.
해방 이후 「혁명에의 길1」·「투사」·「섬」 등을 그린 화가.
박성규 (朴性圭)
해방 이후 「혁명에의 길1」·「투사」·「섬」 등을 그린 화가.
일제강점기 「정물」, 「천단」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박진명 (朴振明)
일제강점기 「정물」, 「천단」 등을 그린 화가. 서양화가.
조선후기 문신 조형(趙珩, 1606∼1679)이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655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1655년(효종 6) 4월 20일 조형 일행이 한양을 출발한 때부터 시작되며, 에도에서 귀국길에 올라 이듬해인 2월 1일 쓰시마[對馬]의 장수원(長壽院)에 머문 날까지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86장이며, 부록은 31장이다. 통신사 일행 중 정사의 입장에서 사행 과정을 기록한 사행록이라는 점에서 통신사 연구뿐만 아니라 17세기 중반 한일관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충분하다.
부상일기 (扶桑日記)
조선후기 문신 조형(趙珩, 1606∼1679)이 통신사 정사로 일본에 다녀온 후 1655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1655년(효종 6) 4월 20일 조형 일행이 한양을 출발한 때부터 시작되며, 에도에서 귀국길에 올라 이듬해인 2월 1일 쓰시마[對馬]의 장수원(長壽院)에 머문 날까지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86장이며, 부록은 31장이다. 통신사 일행 중 정사의 입장에서 사행 과정을 기록한 사행록이라는 점에서 통신사 연구뿐만 아니라 17세기 중반 한일관계의 특징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충분하다.
조선후기 문신 조형이 1660년 10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연경에 파견될 때부터 다음 해 3월 국내로 돌아올 때까지의 공식적인 업무와 일정을 중심으로 일자 · 날씨와 수행 인원 및 노정 등을 차례로 기록하였다. 1661년(현종 2) 1월 1일 황제에게 진하하기 위해 궁궐에 나아갔으나, 황제의 상사(喪事)로 진하하지 못하고, 1월 20일 귀국길에 올라 2월 15일 의주를 거쳐 용천(龍川), 선천(宣川), 곽산(郭山)에 도착하였다는 기사까지를 내용을 한다. 사행의 노정과 청나라의 동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취병공연행일기 (翠屛公燕行日記)
조선후기 문신 조형이 1660년 10월 동지사로 연경에 다녀온 후에 작성한 견문록이다. 연경에 파견될 때부터 다음 해 3월 국내로 돌아올 때까지의 공식적인 업무와 일정을 중심으로 일자 · 날씨와 수행 인원 및 노정 등을 차례로 기록하였다. 1661년(현종 2) 1월 1일 황제에게 진하하기 위해 궁궐에 나아갔으나, 황제의 상사(喪事)로 진하하지 못하고, 1월 20일 귀국길에 올라 2월 15일 의주를 거쳐 용천(龍川), 선천(宣川), 곽산(郭山)에 도착하였다는 기사까지를 내용을 한다. 사행의 노정과 청나라의 동정을 사실적으로 기록하였다.
싸롱 아루스는 1960년 이형록과 정범태가 신선회 탈퇴 후 창립한 조형주의 사진 단체이다. 이형록은 신선회가 리얼리즘 사진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여 한국 사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빈곤과 궁핍을 상징하는 피사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조형성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싸롱 아루스는 195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편향성에 맞서 모더니즘 사진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런 시도는 현대사진연구회로 계승된다.
싸롱아루스 (―)
싸롱 아루스는 1960년 이형록과 정범태가 신선회 탈퇴 후 창립한 조형주의 사진 단체이다. 이형록은 신선회가 리얼리즘 사진을 성공적으로 구현하여 한국 사진에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했지만 형식적 완결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비판한다. 빈곤과 궁핍을 상징하는 피사체에만 집착한 나머지 조형성을 소홀히 했다는 것이다. 싸롱 아루스는 1950년대 리얼리즘 사진의 편향성에 맞서 모더니즘 사진을 추구하고자 했던 시도로 평가받는다. 이런 시도는 현대사진연구회로 계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