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중요민속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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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룡포 부 용문보는 황제의 평상복인 황색 곤룡포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무늬 표장이다. 조선 시대 왕의 평상복은 다홍색 곤룡포였는데 고종황제 때부터 황색 곤룡포를 착용했다. 이 황색 곤룡포는 순종황제가 입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용무늬 표장인 용문보가 양어깨와 가슴, 등에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해를,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원형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이 곤룡포는 20세기 초기의 단령(깃) 양식을 보여 준다. 이 황제 곤룡포는 대한제국 시기 국왕의 평상시 복식 제도를 참조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황실 유물이다.
곤룡포 부 용문보 (袞龍袍 付 龍紋補)
곤룡포 부 용문보는 황제의 평상복인 황색 곤룡포 1점과 곤룡포에 부착된 용무늬 표장이다. 조선 시대 왕의 평상복은 다홍색 곤룡포였는데 고종황제 때부터 황색 곤룡포를 착용했다. 이 황색 곤룡포는 순종황제가 입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용무늬 표장인 용문보가 양어깨와 가슴, 등에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그리고 가슴에는 해를, 등에는 달을 상징하는 원형 무늬가 수놓아져 있다. 이 곤룡포는 20세기 초기의 단령(깃) 양식을 보여 준다. 이 황제 곤룡포는 대한제국 시기 국왕의 평상시 복식 제도를 참조할 수 있는 매우 귀중한 황실 유물이다.
김함의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이다. 김해 김씨 문중이 선산의 묘역을 이장하던 중 출토되었다. 김함은 임진왜란 시 전사하여 나무로 시신 형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유물은 장옷 3점, 저고리 2점, 바지 2점, 모자 1점, 누비무명버선 1쌍 등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출토 의복은 출토 복식 연구 초기에 발견된 자료로서, 특히 의리장의 장속(葬俗)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
김함의 묘 출토 의복 (金涵의 墓 出土 衣服)
김함의 묘 출토 의복은 1985년 전라남도 영암군 학산면 학계리 김함의 묘에서 출토된 복식 및 부장품 17점이다. 김해 김씨 문중이 선산의 묘역을 이장하던 중 출토되었다. 김함은 임진왜란 시 전사하여 나무로 시신 형상을 만들어 장례를 치렀다. 유물은 장옷 3점, 저고리 2점, 바지 2점, 모자 1점, 누비무명버선 1쌍 등이다. 1987년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단국대학교 석주선기념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출토 의복은 출토 복식 연구 초기에 발견된 자료로서, 특히 의리장의 장속(葬俗)은 현재까지 확인된 유일한 자료로 의미가 있다.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
동궁비 원삼 (東宮妃 圓衫)
동궁비 원삼은 순종이 황태자로 있을 때 거행된 가례에서 동궁비 윤비가 착용하였던 오조룡보가 부착된 홍색 원삼 1점이다. 다홍색 운봉문(雲鳳紋) 비단에 동일한 문양이 직금된 매우 화려한 원삼이다. 오조룡원보 2쌍 4점이 부착되어 있다. 조선의 마지막 국혼이었던 병오년 가례 시 황태자비 신분인 윤비가 착용하였다.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왕실 원삼 형태를 보인다. 윤황후가 세종대학교 설립자에게 기증하였다. 1979년에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세종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착용자와 착용시기가 밝혀진 왕실 가례복으로서 가치가 높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연자매.
연자매 (硏子磨)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에 있는 연자매.
윤증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의 유품과 윤증가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이다.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복식 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회화 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생활 자료는 모두 33점으로 합죽선 1점과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논산 명재고택과 유봉영당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윤증가의 유품 (尹拯家의 遺品)
윤증가의 유품은 조선 후기의 문신 윤증의 유품과 윤증가 종부에게 물려온 후손의 유품이다. 2차에 걸쳐 총 53점이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복식 자료는 모두 11점으로 1차 지정된 10점과 추가 지정된 아얌 1점이 있다. 회화 자료는 2004년에 추가 지정된 것으로 14점이다. 생활 자료는 모두 33점으로 합죽선 1점과 인장 28과(顆), 벼루 1점, 치미추 1점, 혼천의 1점, 해시계 1점이다. 논산 명재고택과 유봉영당에 보존되어 오고 있다. 한 집안의 대를 이은 유물로 착용자의 배경을 확인할 수 있고 그 자료도 방대하여 민속학적·학술적 가치가 크다.
전 박신룡 장군 의대는 조선 후기의 장군 박신룡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식이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박신룡은 전사하였다.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집에 있던 박신룡의 유의와 신발을 함께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 유물은 1885년 박신룡의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봉안하였던 단령 1점, 철릭 2점, 쾌자 1점이다. 박신룡의 생존 시기 이후인 18∼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앞에 ‘전(傳)’자를 붙여 칭하고 있다. 당시 박신룡의 옷을 마련하지 못하여 후손의 옷을 대신 봉안한 것으로 사료된다. 198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전 박신룡 장군 의대 (傳 朴信龍 將軍 衣帶)
전 박신룡 장군 의대는 조선 후기의 장군 박신룡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식이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박신룡은 전사하였다.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집에 있던 박신룡의 유의와 신발을 함께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 유물은 1885년 박신룡의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봉안하였던 단령 1점, 철릭 2점, 쾌자 1점이다. 박신룡의 생존 시기 이후인 18∼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앞에 ‘전(傳)’자를 붙여 칭하고 있다. 당시 박신룡의 옷을 마련하지 못하여 후손의 옷을 대신 봉안한 것으로 사료된다. 198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