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전 박신룡 장군 의대는 조선 후기의 장군 박신룡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식이다. 1627년 정묘호란 때 박신룡은 전사하였다. 당시 시신을 찾지 못하여 집에 있던 박신룡의 유의와 신발을 함께 매장하였다고 한다. 이 유물은 1885년 박신룡의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봉안하였던 단령 1점, 철릭 2점, 쾌자 1점이다. 박신룡의 생존 시기 이후인 18∼19세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앞에 ‘전(傳)’자를 붙여 칭하고 있다. 당시 박신룡의 옷을 마련하지 못하여 후손의 옷을 대신 봉안한 것으로 사료된다. 1980년 국가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정의
조선 후기의 장군 박신룡(朴信龍, 1575∼1627)이 입었던 것으로 알려진 복식.
개설
지정유물은 1885년(고종 22) 박신룡의 유의각(遺衣閣)을 세우고 봉안하였던 복식이다. 단령 1점, 철릭 2점, 쾌자 1점 등 모두 4점인데, 각 유물의 형태가 박신룡의 생존 시기에 성행한 특성을 보이지 않고 그보다 100여 년에서 200여 년 이후인 18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특성을 보이고 있어 지정 명칭 앞에 ‘전(傳)’자를 붙여 칭하고 있다. 1980년 4월 1일 국가민속문화재(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되어 현재 국립부여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이 외에도 지정에서 제외된 명주로 만든 대(帶) 3점이 별도로 있다.
내용
철릭[帖裡] 2점은 명주로 만든 청철릭과 홍철릭이 있는데, 모두 홑철릭이다. 청철릭은 옅은 쪽빛 명주로 만들었다. 깃은 칼깃이며 동정은 몸판과 달리 엷은 한지로 만들었다. 총길이는 140㎝인데, 상의(上衣) 46㎝, 하상(下裳) 94㎝로 분리되어 치마 부분은 너비 40㎝의 옷감을 9조각을 붙여 2.5㎝의 폭으로 주름을 잡았다. 화장 117㎝, 품 64㎝이며, 소매 배래와 수구가 50㎝로 동일한 넓은 일자형이다. 길이 45㎝, 너비 4.5㎝의 고름이 달려있다. 홍철릭은 거친 주(紬)를 풀 먹여 곱게 도련한 홑옷이다. 총길이는 129㎝인데, 상의가 48㎝, 하상이 81㎝이다. 화장 111㎝, 품 50㎝, 주름 폭 5㎝로 청철릭보다 옷 크기가 작고 주름 폭은 넓으며 고름도 넓은 편이다. 2점의 철릭은 전체적으로 성근 바느질로 만들었다.
쾌자[掛子]는 대금형(對衿形)의 맞깃이 달리고 소매가 없는 형태의 의복을 칭하는데, 전복(戰服)과 형태는 같고 배자깃이 달린 것이 다른 점이다. 명주로 만들었고, 겉은 자색, 안은 백색이며, 소매가 없고 깃의 모양은 끝부분이 둥글려진 배자깃에 동정이 달린 형태이며 쌍밀이 단추가 2개 달려 여밈 하였다. 길 좌우에는 진동 아래부터 시작되는 커다란 삼각무가 달려 있다. 뒷길이 107㎝, 품 40㎝이며, 뒷고대에서 31㎝ 내려와서 75㎝의 뒤트임이 있다. 이러한 형태의 의복들은 아직 확실하게 명칭이 규명되지 못하고 연구자에 따라 전복, 답호, 괘자 등으로 부르고 있다.
4점의 유물 외에도 전박신룡장군유물 중에는 대(帶)가 3점 포함되어 있는데 명주를 겹으로 만들었다. 크기는 각각 홍색은 길이 330㎝, 폭 6.5㎝, 청색은 길이 236㎝, 폭 9㎝, 주황색은 길이 260㎝, 폭 7.5㎝이다.
의의와 평가
참고문헌
-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 2 복식자수편-』(문화재청, 2006)
- 『문화재대관 -중요민속자료편 하(下)-』(문화재관리국, 19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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