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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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승은 고려 후기 권신 지윤의 심복이었던 문신이다. 그는 우현보 등과 함께 언론활동을 하였으나, 우왕대 초에 권신 지윤의 심복이 되었다. 그는 지윤을 수상으로 만들기 위해 경복흥(慶復興)을 탄핵하는 등 당여의 이익을 꾀하다 함께 처형되었다.
김윤승 (金允升)
김윤승은 고려 후기 권신 지윤의 심복이었던 문신이다. 그는 우현보 등과 함께 언론활동을 하였으나, 우왕대 초에 권신 지윤의 심복이 되었다. 그는 지윤을 수상으로 만들기 위해 경복흥(慶復興)을 탄핵하는 등 당여의 이익을 꾀하다 함께 처형되었다.
경복흥은 고려 후기에, 수시중, 수성도통사, 청원부원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우대언을 역임한 경사만의 아들이다. 감찰과 장령을 거쳐 1354년에 군부판서가 되었다. 이후 판추밀원사, 참지문하정사, 지문하정사, 지정사상의에 올랐다. 1359년에 기철 등 부원파를 숙청한 공로로 1등 공신에 봉해졌다. 1361년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을 모시고 안동으로 피난하였다. 1363년 원나라가 공민왕을 폐위하고 침입하자 서북면도원수로서 방어하였다. 1374년 공민왕이 시해된 이후 이인임과 임견미의 참소로 청주로 귀양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시호는 정렬이다.
경복흥 (慶復興)
경복흥은 고려 후기에, 수시중, 수성도통사, 청원부원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우대언을 역임한 경사만의 아들이다. 감찰과 장령을 거쳐 1354년에 군부판서가 되었다. 이후 판추밀원사, 참지문하정사, 지문하정사, 지정사상의에 올랐다. 1359년에 기철 등 부원파를 숙청한 공로로 1등 공신에 봉해졌다. 1361년에 홍건적이 침입하였을 때 공민왕을 모시고 안동으로 피난하였다. 1363년 원나라가 공민왕을 폐위하고 침입하자 서북면도원수로서 방어하였다. 1374년 공민왕이 시해된 이후 이인임과 임견미의 참소로 청주로 귀양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시호는 정렬이다.
고려 후기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가담하였으며, 왜구를 토벌하다 전사한 관리·공신.
김상 (金賞)
고려 후기에,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에 가담하였으며, 왜구를 토벌하다 전사한 관리·공신.
고려후기 집의, 좌부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간신.
김승득 (金承得)
고려후기 집의, 좌부대언 등을 역임한 문신. 간신.
염흥방은 고려 후기 좌대언, 밀직부사, 도병마사, 삼사좌사 등을 역임하며 2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문신이다.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 지신사, 밀직부사, 밀직지신사, 밀직제학, 도병마사, 서성군, 삼사좌사를 역임하였다. 1387년(우왕 13)에는 염흥방의 종 이광이 전 밀직부사 조반의 토지를 강탈한 사건을 계기로 1388년(우왕 14)에 최영·이성계 등에게 지윤·임견미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염흥방 (廉興邦)
염흥방은 고려 후기 좌대언, 밀직부사, 도병마사, 삼사좌사 등을 역임하며 2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문신이다. 1357년(공민왕 6) 과거에 장원급제하여 좌대언, 지신사, 밀직부사, 밀직지신사, 밀직제학, 도병마사, 서성군, 삼사좌사를 역임하였다. 1387년(우왕 13)에는 염흥방의 종 이광이 전 밀직부사 조반의 토지를 강탈한 사건을 계기로 1388년(우왕 14)에 최영·이성계 등에게 지윤·임견미 등과 함께 살해되었다.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상왕산(象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
상왕산 영탑사 (象王山 靈塔寺)
충청남도 당진시 면천면 상왕산(象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도선국사가 창건한 사찰.
이희필은 고려 후기 공민왕~우왕 대에 양광도상원수(楊廣道上元帥), 서북면상원수(西北面上元帥), 동강도원수(東江都元帥)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그는 공민왕 대에 신돈(辛旽) 제거 모의에 참여하였다가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후 신돈이 제거되자 정계에 복귀하였으며, 우왕 대에는 최영(崔瑩) 등과 함께 왜구를 격퇴하고 지윤(池奫) 일당을 제거하는 데에도 참여하였다.
이희필 (李希泌)
이희필은 고려 후기 공민왕~우왕 대에 양광도상원수(楊廣道上元帥), 서북면상원수(西北面上元帥), 동강도원수(東江都元帥) 등을 역임한 무신이다. 그는 공민왕 대에 신돈(辛旽) 제거 모의에 참여하였다가 유배형에 처해졌다. 이후 신돈이 제거되자 정계에 복귀하였으며, 우왕 대에는 최영(崔瑩) 등과 함께 왜구를 격퇴하고 지윤(池奫) 일당을 제거하는 데에도 참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