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좌대언·밀직부사·도병마사·삼사좌사 등을 역임하며 2등 공신에 책록된 공신이자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1374년(공민왕 23)에 탐라(耽羅) 목호의 난(牧胡의 亂)에 밀직제학(密直提學)으로서 도병마사(都兵馬使)가 되어 최영(崔塋) 등과 함께 출전해 이를 진압하였다. 1375년(우왕 1)에 권신(權臣) 이인임(李仁任)의 뜻에 거슬려 정몽주(鄭夢周) 등과 함께 유배되었다. 그러나 곧 풀려나 서성군(瑞城君)에 봉해지고 삼사좌사(三司左使)가 되었다.
1380년(우왕 6)에 지공거로 동지공거 박형(朴形)과 함게 과거를 주관하여 이문화(李文和)·이지직(李之直)·한상질(韓尙質)·성수항(成守恒) 등을, 1386년(우왕 12)에 동지공거로 지공거 이색(李穡)과 함께 맹사성(孟思誠)·길재(吉再)·심온(沈溫)·조연(趙涓)·정곤(鄭坤)·신원필(申元弼) 등을 각각 선발하였다.
이인임의 심복 임견미(林堅味) 등과 함께 많은 문신을 모함해 축출하고 매관매직을 자행하였다. 또한 백성의 토지와 노비는 물론 국유지까지 강점하는 등 비행을 일삼아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연락(宴樂)에 빠져 있던 우왕을 충동해 음행을 일삼도록 부추겨 국정이 더욱 문란해지게 하였다.
1387년(우왕 13)에는 염흥방의 종 이광(李光)을 시켜 전 밀직부사 조반(趙胖)의 토지를 강탈하자 이에 분개한 조반이 이광을 잡아 죽이는 일이 벌어졌다. 이에 염흥방은 조반이 반란을 꾀한다고 무고해 조반과 그 가족을 잡아 순군옥(巡軍獄)에 가두고, 상만호(上萬戶)의 지위를 이용해 혹독하게 심문하였다.
이에 1388년(우왕 14) 그들의 행패를 미워하던 우왕 및 최영·이성계 등에 의해 그 일당과 함께 처형되었다. 학문에 뛰어나 여러 번 동지공거가 되었으나 시험관으로 공정하지 못한 점이 많았다.
학문과 저술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논문
- 도현철, 「고려말 염흥방의 정치활동과 사상의 변화」 (『동방학지』 141, 연세대학교 국학연구원, 2008)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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