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없다.
『삼각산명당기』는 고려시대 지리도참사상(地理圖讖思想)을 엿볼 수 있는 대표적인 기록의 하나로, 전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고 그 일부만이 『고려사(高麗史)』에 실려 전하고 있으며, 이궁(離宮) 설치나 천도설(遷都說)이 제기될 때마다 주목되었다.
이 책의 전체적인 구성과 체제는 알 수 없다. 다만 1095년(숙종 원년)에 당시에 음양관(陰陽官)이었던 위위승동정(衛尉丞同正) 김위제(金謂磾)가 『도선기(道詵記)』 · 『도선답산가(道詵踏山歌)』 · 『삼각산명당기(三角山明堂記)』 · 『신지비사(神誌秘詞)』 등의 풍수도참서(風水圖讖書)를 근거로 하여 남경건도(南京建都)를 주장하였는데, 특히 『삼각산명당기』와 『신지비사』에는 남경(南京)의 풍수지리(風水地理)를 설명하는 내용이 들어 있다. 『고려사』 권122 열전(列傳) 35 김위제전의 『삼각산명당기』에는 고려시대 남경(현, 서울 지방)을 명당으로 풀이하였다.
그 내용으로 “눈을 들고 머리를 돌려 산의 모양을 살펴보면[擧目回頭審山貌]/ 북쪽을 등지고 남쪽을 향하였으니[背壬向丙是仙鼇]/ 이곳이 바로 명당[仙鼇]이다.[背壬向丙是仙鼇]/ 음양(陰陽)의 꽃이 서너 겹으로 피었으니[陰陽花發三四重]/ 몸소 소매를 걷어 붙이고 산을 등지며 수호(守護)에 임하는구나[親袒負山臨守護]/ 안산(案山) 앞의 조산(朝山)이 대여섯 겹이며[案前朝山五六重]/ 고모산과 숙부산, 아버지산과 어머니산이 높이 용솟음쳐 있구나[姑叔父母山聳聳]/ 안팎의 문을 각기 개 세 마리씩이 지키며[內外門犬各三爾]/ 임금님을 모시는데 항상 충성을 다하고 있다네[侍龍顔勿餘心]/ 청백(靑白)이 서로 오르니 시비(是非)하지 말라.[靑白相登勿是非]/ 내외(內外)의 상객(商客)이 각기 보배를 바치네.[內外商客各獻珍]/ 이름 파는 인객(隣客)이 자식처럼 오고[賣名隣客如子來]/ 나라와 임금을 보필하는데 모두 한마음이네,[輔國匡君皆一心]/ 임자년 중에 개토(開土)한다면[壬子年中若開土]/ 정사년에 성자(聖子)를 얻으리라.[丁巳之歲得聖子]/ 삼각산에 기대어 제경(帝京)을 지으면[憑三角山作帝京]/ 9년째에 사해(四海)가 조회하리라.[第九之年四海朝].”라는 기록이 전한다.
숙종 때 남경을 재설치함에 있어 음양가(陰陽家)인 위위승동정 김위제는 『삼각산명당기』의 내용을 『도선기』, 『신지비사』 등의 지리도참 내용과 더불어 크게 강조하여, 남경의 설치와 순주(巡駐, 왕이 순행하면서 머묾)를 주청(奏請)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1104년(숙종 9) 남경 궁궐의 낙성(落成)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