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릉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제23대 왕 고종에게 절효라는 시호를 받은 효자.
이칭
대방(大方)
시호
절효(節孝)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미상
본관
이천(利川)
출생지
전라도 장성현
주요 저서
거가십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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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서릉은 고려 후기 제23대 왕 고종에게 절효라는 시호를 받은 효자이다. 전라도 장성현 사람으로, 어머니의 낫기 어려운 악성 종기를 낫게한 효자로 알려져 있다. 『고려사』 효우 열전에 입전되어 있으며, 시묘살이할 때 배우러 온 어린 자제들이 예제를 알지 못하므로 「거가십훈」을 만들어 가르쳤다. 1578년(선조 11)에 효자 서릉의 효행을 표창하기 위해 정려비를 세웠다.

정의
고려 후기, 제23대 왕 고종에게 절효라는 시호를 받은 효자.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이천(利川)이고, 자(字)는 대방(大方)이다. 전라도 장성현(長城縣) 사람으로, 아버지는 흥위위(興威衛) 보승별장(保勝別將)을 지낸 서희팔(徐希八)이며, 어머니는 합천이씨(陜川李氏) 이순목(李純牧)의 딸이다.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하지 않았다.

주요 활동

『이천서씨절효공파대동보(利川徐氏節孝公派大同譜)』에 따르면, 어린 나이에 대과(大科)에 급제하고 시중(侍中) 벼슬을 하였다고는 하나 그의 정치적 활동이나 다른 행적은 거의 전하지 않는다. 이규보(李奎報)와 함께 교유한 사실이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에 전한다.

1246년(고종 33) 12월 겨울에 어머니의 목에 악성 종기가 나서 의원을 불러와 진료하게 하였다. 의원이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하지 못하면 낫기 어렵다고 하였다. 당시 추위가 한창이었으므로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며, 어머니의 병은 고치지 못할 것이라 여기고 목 놓아 울었다. 다른 약이라도 만들자며 나무 아래에서 약을 만드는데 살아 있는 개구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약 만드는 그릇으로 들어갔다. 약을 만들어 어머니의 종기에 바르니 종기가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설화(孝行說話)를 탄생시킨 서릉은 고려 무신집권기의 대표적 효자였다.

1232년(고종 19)에서 1233년(고종 20) 무렵, 조모상을 당하여 지은 「거가십훈(居家十訓)」이 있다. 서릉이 시묘살이할 때 배우러 온 어린 자제들이 예제(禮制)를 알지 못하므로 만들어 가르쳤던 것이다. 모두 10조목으로 구성되었는데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참고하여 완성하였다. 「거가십훈」을 최초로 수록한 간본은 1578년(선조 11) 또는 직후에 간행된 「고려시중절효선생서공거가십훈(高麗侍中節孝先生徐公居家十訓)」이다.

상훈과 추모

고려 고종(高宗)이 절효(節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려사』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었다. 조선시대인 1578년(선조 11)에 효자 서릉의 효행을 표창하기 위해 정려비(旌閭碑)를 세웠다. 서릉정려비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박산리에 소재하며, 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前集)』
「고려시중절효선생서공비명병서(高麗侍中節孝先生徐公碑銘幷序)」

단행본

이희덕, 『고려유교정치사상의 연구: 고려시대 천문·오행설과 효사상을 중심으로』 (일조각, 1984)

논문

강성원, 「고려사 열전에 대한 분석적 고찰」 (『이화사학연구』 17·18, 이화사학연구소, 1988)
고영진, 「장성지역의 유학 전통과 특징」 (『역사학연구』 55, 호남사학회, 2014)
노혜진, 「『고려사』 열전 효우편의 효우설화 연구」 (한양대학교 석사학위논문, 2005)
오용섭, 「서능의 「거가십훈」연구」 (『서지학연구』 42, 한국서지학회, 2009)

기타 자료

이해준, 「서릉절효각정려비 조사보고서」 『1987문화재조사보고서: 추가』 (전라남도, 1987)
이천서씨 절효공파 대종회, 『이천서씨절효공파대동보』(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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