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이천(利川). 전라도 장성현(長城縣) 사람으로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벼슬을 하지 않았다. 1246년(고종 33) 12월 겨울에 어머니의 목에 악성 종기가 나서 의원을 불러와 진료하게 하였다. 의원이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하지 못하면 낫기 어렵다고 하였다. 당시 추위가 한창이었으므로 살아 있는 개구리를 구할 수 없을 것이며 따라서 어머니의 병은 고치지 못하겠다고 목 놓아 울었다. 다른 약이라도 만들자며 나무 아래에서 약을 만드는데 살아 있는 개구리가 나무에서 떨어져 약 만드는 그릇으로 들어갔다. 약을 만들어 어머니의 종기에 바르니 종기가 나았다고 한다. 이러한 효행설화를 탄생시킨 서릉은 고려 무신집권기의 대표적 효자였다.
고려 고종이 절효(節孝)라는 시호를 내렸다. 『고려사(高麗史)』 효우(孝友) 열전에 입전되었다. 조선시대인 1578년(선조 11)에 효자 서릉의 효행을 표창하기 위해 정려비를 세웠다. 서릉정려비는 전라남도 장성군 북일면 박산리에 소재하며 1988년 전라남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