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서원(瑞原). 아버지는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 염제신(廉悌臣)이다. 서성군(瑞城君) 염흥방(廉興邦)·염정수(廉廷秀)는 아우로서 형제가 모두 급제하였다. 이제현(李齊賢)―안보(安輔)로 이어지는 좌주문생(座主門生)의 관계였다.
학문적 경향은 성리학을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안렴사(按廉使)로 지방에 파견되어 폐단을 다스리는 등 개혁에 참여하였다. 서성군(瑞城君)에 봉해졌으며 1385년(우왕 11) 4월에 지공거(知貢擧: 고려시대 시험감독관)가 되어 동지공거(同知貢擧)인 정당문학(政堂文學)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진사(進士)를 뽑고 우홍명(禹洪命) 등 33인에게 급제를 내렸다.
덕창부행수(德昌府行首) 문윤경(文允慶)은 본디 환관 이광(李匡)의 종자(從者)로 그 친구의 책문(策問: 정치에 관한 대책을 물어 적게 하던 문과 시험)을 훔쳐 썼던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안 정몽주가 문윤경을 내쫓았는데 염국보(廉國寶)가 이를 다시 취하였다.
최영(崔瑩)이 사람들에게 농담으로 말하기를 “전달에 감시학사(監試學士) 윤취(尹就)는 빈한한 선비를 버리고 어리석은 아이를 취하였으므로 하늘이 큰 우박을 내려 내 삼[麻]을 다 망쳤는데 이번에 동당학사(東堂學士)는 또 어떠한 천변(天變)을 가져오려는가.”라고 하였다. 1388년 1월 최영·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아우 염흥방 및 임견미(林堅味) 등이 제거될 때 함께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