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적 경향은 성리학을 수용하였던 것으로 보이며, 안렴사(按廉使)로 지방에 파견되어 폐단을 다스리는 등 개혁에 참여하였다. 서성군(瑞城君)에 봉해졌으며, 1354년(공민왕 4) 지공거(知貢擧) 이공수(李公遂)와 동지공거(同知貢擧) 안보(安輔)가 주관한 과거에 안을기(安乙起: 安乙器)· 한방신(韓方信)·이집(李集: 李元齡)· 정습인(鄭習仁)· 이보림(李寶林)· 우현보(禹玄寶)· 오사충(吳思忠: 오사정(吳思正))· 김구용(金九容: 김제민(金齊閔)) 등과 함께 과거에 급제하였다.
이후, 예문관(藝文館) 대제학(大提學)·지춘추관사(知春秋館事)를 거쳤다. 1385년(우왕 11) 지공거로서 동지공거 정몽주(鄭夢周)와 함께 과거를 주관하여 우홍명(禹洪命)·권원(權遠)·왕비(王裨)·이실(李室)·최선(崔宣) 등 33인을 선발하였다. 명(明)나라의 3년 주1를 초상 때 입는 복제로 최초로 도입하였다.
덕창부행수(德昌府行首) 문윤경(文允慶)은 본디 환관(宦官) 이광(李匡)의 종자(從者)로 그 친구의 주2을 훔쳐 썼던 적이 있다. 이 사실을 안 정몽주가 문윤경을 내쫓았는데 염국보(廉國寶)가 이를 다시 취하였다. 최영(崔瑩)이 사람들에게 비웃으며 말하기를, “전달에 국자감시학사(監試學士) 윤취(尹就)는 빈한한 선비를 버리고 어리석은 아이를 취하였으므로 하늘이 큰 우박을 내려 내 삼[麻]을 다 망쳤는데, 이번에 동당학사(東堂學士)는 또 어떠한 천변(天變)을 가져오려는가.”라고 하였다.
1388년(우왕 14) 1월 최영, 이성계(李成桂)에 의하여 아우 염흥방 및 임견미(林堅味) 등이 제거될 때 함께 살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