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고려 후기, 동지공거·정당문학·동경유수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주요 활동
그 뒤 우대언겸집의(右代言兼執義)를 거쳐 충정왕(忠定王) 때 전법판서(典法判書)가 되었다. 1352년(공민왕 1) 밀직제학(密直提學)이 되고, 이어 감찰대부제조전선사(監察大夫提調銓選事)를 지냈다. 1355년(공민왕 4) 밀직제학으로 동지공거(同知貢擧)가 되어 지공거(知貢擧) 이공수(李公遂)와 함께 안을기(安乙器)·한방신(韓方信)·이보림(李寶林)·염국보(廉國寶)·이인(李靭)·우현보(禹玄寶)·정습인(鄭習仁)·이원령(李元齡)·오사충(吳思忠)·김구용(金九容)·양이시(楊以時) 등을 진사(進士)로 뽑았으며, 이해 정당문학(政堂文學)에 올랐다. 어머니 봉양을 이유로 사직하려고 하자 고향인 순흥 가까이서 일을 볼 수 있도록 동경유수(東京留守)로 임명되었다. 안보는 형의 묘지명(墓誌銘)을 과거 급제의 동년인 이곡에게 부탁하였다.
음양술(陰陽術)로 길흉(吉凶)을 따지는 것을 싫어하였으며, 성품이 청렴하고 강직하였다. 또한 『사기(史記)』와 『한서(漢書)』를 즐겨 읽었고, 문장은 화려함을 버리고 실질을 중요시하였다. 일을 할 때에는 대체(大體)에 힘쓰고 조금이라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경제적인 이익을 취하지 않아 죽을 때 집에는 양식 한 섬도 저축해 둔 것이 없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가정집(稼亭集)』
- 『목은고(牧隱藁)』
단행본
- 김용선, 『고려묘지명집성』 (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 2001)
-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 연구』 (일지사, 1990)
- 조선총독부 편, 『조선금석총람 (상)』 (아세아문화사, 1976)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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