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염제신(廉悌臣)은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고려와 원을 오가며 관직 생활을 했던 관료이다. 1302년(충렬왕 30) 출생하여 원(元) 평장사(平章事)인 고모부 말길(末吉)의 집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충숙왕 대에 정동행성 관원으로서 고려에 와서 충숙왕의 신임을 받았고, 공민왕 대에는 고우성(高郵城) 공격을 위한 고려군을 이끌었으며, 공민왕 5년 개혁 당시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로 원의 공격에 대비하기도 하였다. 1382년(우왕 8)에 사망하였다.
정의
고려 후기,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 영삼사사(領三司事),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 사항
주요 활동
충목왕(忠穆王) 때 삼사좌사(三司左使)에 임명되고 수성익대공신(輸誠翊戴功臣)으로 봉해졌다. 뒤이어 도첨의평리(都僉議評理)가 되었고, 1349년(충정왕 1)에 찬성사(贊成事)가 되었으며 이듬해 하정사(賀正使)로 원에 갔다.
1354년(공민왕 3)에 좌정승(左政丞)이 되었다가 곧 우정승(右政丞)이 되었다. 단성수의동덕보리공신(端誠守義同德輔理功臣)에 봉해지고 곡성부원군(曲城府院君)이 되었다. 그때 원에서 난을 일으킨 고우성(高郵城)의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하기 위해 고려의 군대를 요구하니, 염제신이 유탁(柳濯) 등과 함께 군사 2,000명을 이끌고 원나라에 갔다가 그해 10월에 공민왕(恭愍王)의 부름을 받고 귀국하였다. 1356년(공민왕 5)에 기철(奇轍) 일당을 숙청한 뒤 서북면도원수(西北面都元帥)가 되어 원의 공격에 대비하였다. 그해 수문하시중(守門下侍中)을 겸하였다. 1358년(공민왕 7)에 문하시중(門下侍中)이 되었으며, 1361년(공민왕 10)에 관직과 명망이 최고위에 이르자 사직하였다. 그 뒤 다시 기용되어 1363년(공민왕 12)에 우정승이 되었으나, 홍건적의 난 때 어머니를 버리고 피난한 것이 문제가 되어 고신(告身)에 서경(署經)되지 못하고 파면되었다. 김용(金鏞)이 처형당하자 김용의 인척이라는 이유로 파직되었다. 1364년(공민왕 13) 영도첨의사사(領都僉議司事)가 되었을 때, 신돈(辛旽)과 마찰을 빚기도 하였으나,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는 않았다. 1371년(공민왕 20) 오로산성(五老山城)을 정벌할 때 서북면도통사(西北面都統使)가 되어 이기고 돌아와 곡성백(曲城伯)에 봉해졌다. 그해 딸이 공민왕의 비인 신비(愼妃)로 책봉되었다.
우왕(禑王)이 즉위하자 영삼사사(領三司事)가 되었고, 곧 영문하부사(領門下府事)가 되었으며 충성수의동덕논도보리공신(忠誠守義同德論道輔理功臣)에 봉해졌다. 1379년(우왕 5)에 세워진 여주 신륵사 보제존자석종비(神勒寺普濟尊者石鐘碑)에는 혜근(惠勤)의 입적 후 제자들이 진영당(眞影堂)을 짓고 석종을 만들어 사리를 봉안하면서 그 비문을 신륵사에 자주 드나들던 염제신을 통해 이색(李穡)에게 부탁하여 짓게 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참고문헌
원전
- 『고려사(高麗史)』
-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목은시고(牧隱詩藁)』
- 『목은문고(牧隱文藁)』
단행본
- 김용선 편, 『고려묘지명집성』(한림대출판부, 2001)
주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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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 조선 시대에, 해마다 정월 초하룻날 새해를 축하하러 중국으로 가던 사신. 동지와 정월이 가까이 있으므로 동지사(冬至使)가 정조사를 겸하였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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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 조정에서 내리는 벼슬아치의 임명장.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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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 임금이 새 관원을 임명한 뒤에 그 성명, 문벌, 이력 따위를 써서 사헌부와 사간원의 대간(臺諫)에게 그 가부(可否)를 묻던 일.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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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 중국 동남부의 동중국해 연안에 있는 성. 고대 월나라의 땅이었으며, 저우산 군도(舟山群島)에는 불교의 4대 명산 중 하나인 푸퉈산(普陀山)이 있고, 근해에 중국 최대의 어장인 선자먼(沈家門)이 있다. 성도(省都)는 항저우(杭州). ⇒규범 표기는 ‘저장성’이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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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 고려 시대에, 삼사(三司)에 속한 정삼품 벼슬. 충렬왕 때 두었으며, 공민왕 11년(1362)에 품계를 정이품으로 올렸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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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 임금이나 종이품 이상의 벼슬아치의 무덤 동남쪽의 큰길가에 세운 석비(石碑).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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