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안성(安城). 공민왕이 원자(元子)로서 원나라에 들어가 숙위할 때, 시종한 공로로 여러 차례 승진해 대호군이 되었다. 공민왕이 즉위하자 응양군상호군이 되었으며, 원나라로부터 행성원외랑(行省員外郎)의 관직을 받았다. 권신 조일신(趙日新)과는 반목했으나 왕의 비호로 무사하였다. 1352년(공민왕 1) 연저수종공신(燕邸隨從功臣) 일등에 봉해졌고, 밀직부사(密直副使)가 된 뒤 수충분의공신(輸忠奮義功臣)의 호를 받았다. 조일신의 난 때, 궁중에서 숙직하면서도 적을 막지 않고 홀로 무사하여 해도(海島)에 유배되었다.
그러나 1354년 원나라의 요청으로 장사성(張士誠)을 토벌할 군대를 조직할 때, 안성군(安城君)에 봉해져 이에 참여하였다. 1355년 돌아와서 지도첨의사사(知都僉議司事)에 제수되었고, 그 뒤 홍의(洪義) · 정세운(鄭世雲) 등과 함께 모든 정사를 마음대로 하였다. 한편, 이들과 권행(權幸)을 다투던 김보(金普)가 어머니상을 당하자, 그를 견제하기 위해 행성도사(行省都事) 최개(崔介)를 설득, 백관들로 하여금 삼년상을 행하도록 왕에게 청하였다. 결국 왕지(王旨)를 고친 이 사건이 발각되어 제주로 유배되었다.
1356년 기철(奇轍) 일당을 제거한 뒤 다시 첨의평리(僉議評理)가 되었으며, 1358년에는 중서문하시랑평장사(中書門下侍郎平章事)가 되었다. 순군만호(巡軍萬戶)가 되어서는 무뢰배들을 모아 순군에 두고 항상 자기를 따르게 하였다. 1361년 홍건적의 침입시에 총병관(摠兵官)이 되어 방어하였다. 1362년 평소 사이가 나쁜 정세운이 홍건적과의 전투에서 공을 세우자 이를 시기해 안우(安祐) · 김득배(金得培) · 이방실(李芳實)로 하여금 죽이게 한 다음, 안우 등이 주장(主將)인 정세운을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이를 또한 참살하였다.
그 뒤 찬성사(贊成事)에 올랐으며, 홍건적의 침입시 항복해 군(郡)으로 강등된 수원부(水原府)를 주민들의 뇌물을 받고 다시 부로 승격시켜 주었다. 1363년 순군제조(巡軍提調)가 되어 흥왕사(興王寺)의 행궁에 머무르던 왕을 시해하려고 했으나 실패하고, 우정승 홍언박(洪彦博) 등을 살해하였다. 음모가 실패하자 도리어 난병을 토벌하고 비밀을 유지하기 위해 잡힌 자는 모두 죽였고, 난이 진압된 뒤 오히려 일등공신에 봉해졌다. 그러나 사실이 드러나 밀성군(密城郡)에 유배되었다가 계림부(鷄林府주)로 옮겨진 뒤 처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