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 전라도안찰사 · 지밀직사사 · 서북면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298년(충선왕 즉위년)
본관
죽주(竹州)
주요 관직
전라도안찰사, 지밀직사사, 서북면도지휘사
관련 사건
합단적의 침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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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안전은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찰사, 지밀직사사, 서북면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유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 전라도안찰사, 좌승지, 부지밀직사사, 충청도안무사, 지밀직사사, 경상도도지휘사, 충청도도지휘사, 서북면도지휘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주로 충렬왕 대 정방의 필도적(비칙치)으로 활약하였으며, 인사 행정에 있어서 굳게 바름을 지키고 아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람들이 쇠떡[鐵餻]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정의
고려 후기, 전라도안찰사 · 지밀직사사 · 서북면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가계 및 인적사항

본관은 죽주(竹州: 죽산(竹山)). 가계는 자세하게 알 수 없다.

주요 활동

유경(柳璥)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어려서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侍御史)를 역임하였다. 1249년(고종 36) 최공주(崔公柱)와 함께 몽골에 사신으로 다녀왔다. 1275년(충렬왕 1) 전라도안찰사(全羅道按察使)가 되었다. 이때 응방(鷹坊) 소속의 오숙부(吳淑富) 등이 세도(勢道)를 믿고 함부로 굴자 장흥부부사(長興府副使) 신좌선(辛佐宣) 등과 함께 이를 미워하여 예를 갖추어 대접하지 않았다. 이에 오숙부 등이 조정에 돌아가서 안전과 신좌선이 매의 먹이를 주지 않아 가장 아름다운 매 두 마리가 죽었다고 무고하여 파직당하였다.

김주정(金周鼎)이 재추(宰樞)가 너무 많아 국정을 모의하는 데 주장하는 바가 없다는 이유로 필도치(必闍赤)신문색(申聞色)을 설치하여 기무를 맡겨야 한다는 의견에 따라 김주정과 박항(朴恒), 설공검(薛公儉), 이존비(李尊庇), 염승익(廉承益), 인공수(印公秀)· 조인규(趙仁規), 정흥(鄭興), 이지저(李之氐), 곽예(郭預), 이자분(李子芬), 윤문옥(尹文玉), 정현계(鄭玄繼) 등과 함께 필도치가 되었다.

후에 주1 이지저에게 부탁하여 정방에 들어가서 대부소윤(大府少尹)으로서 필도치가 되었다.

1285년(충렬왕 11)에는 판비서사(判秘書事)로 국자감시(國子監試)를 주관하여 윤신걸(尹莘傑) 등을 급제시켰다. 이듬해에 좌승지(左承旨)가 되었으며, 왕이 한 환관에게 참관(參官)을 제수하고자 하므로 끝내 이를 만류하여 왕이 마음을 돌이켰다. 주2를 맡아 굳게 바름을 지키고 아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람들이 쇠떡[鐵餻]이라 칭하였다.

1287년(충렬왕 13)에 부지밀직사사(副知密直司事)가 되고 이어 충청도안무사(忠淸道安撫使), 이듬해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로 성절사(聖節使)가 되어 원(元)나라에 다녀왔다. 1290년(충렬왕 16) 합단적(合丹賊)이 동쪽 변방을 내침해 왔을 때 경상도도지휘사(慶尙道都指揮使), 충청도도지휘사(忠淸道都指揮使)에 임명되었으며, 1291년(충렬왕 17) 서북면도지휘사(西北面都指揮使)를 역임하였다. 1298년(충선왕 즉위년)에 사망하였다.

참고문헌

원전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단행본

박용운, 『고려시대 음서제와 과거제연구』 (일지사, 1990)

논문

류병재, 「카단(Qadan)의 고려 침입 전후 상황과 고려·대원올로스 연합군의 대응」 (『몽골학』 64, 몽골학회, 2021)
이정훈, 「고려후기 필도적의 설치와 그 변화」 (『사학연구』 132, 한국사학회, 2018)
주석
주1

고려ㆍ조선 시대에, 궁중에서 명령 전달, 심부름 따위의 잡무에 종사하던 벼슬아치를 통틀어 이르던 말. 환관이 대표적이다. 우리말샘

주2

인물을 심사하여 적당한 벼슬자리에 배정함.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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