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합주(陜州)이다. 원종 때 판사를 지낸 이신손(李信孫)·이의손(李義孫)과 충렬왕 때 폐행(嬖幸: 간신)으로 재상에 오른 이덕손(李德孫)의 아버지이다.
합주의 이속(吏屬)으로서 어려서부터 학문에 뜻을 두었으며, 특히 글짓기를 잘하였다.
일찍이 아버지를 따라 개경에 가서 문회(文會)에서마다 주필(走筆: 글씨를 흘려서 빨리 씀)로 이름을 떨쳤다. 1212년(강종 1) 6월 예부시에 급제하여 금성관기(錦城管記)에 보임되었으며, 곧 직한림원(直翰林院)으로 옮겼다가 첨사부주부(詹事府注簿)가 되었다.
이 때 술승(術僧) 주연지(周演之, 본명은 최산보(崔山甫))와 가깝게 지냈는데, 1227년(고종 14) 주연지가 최우(崔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면서 금구현령으로 좌천되었다.
그러나 최우가 그 재주를 아깝게 여겨 임기가 끝나기 전에 불러들여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에 임명하여 최항(崔沆)에게 글을 가르치게 하였으며, 다시 판비서성사(判秘書省事)로 승진하여, 1251년(고종 38) 4월 국자시를 주관하였으며, 줄곧 하천단(河千旦), 최온(崔昷)과 함께 지제고(知制誥)를 겸임하였다. 1249년(고종 36) 11월 최이가 죽고 어릴 때 최항의 사부였던 관계로 나중에 상서좌복야에 임명하였으나 미처 제수받기 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