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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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한시대 마한(馬韓) 54개 소국(小國) 중의 하나.
목지국 (目支國)
삼한시대 마한(馬韓) 54개 소국(小國) 중의 하나.
고려전기 제6대 예종의 제3왕비.
문정왕후 (文貞王后)
고려전기 제6대 예종의 제3왕비.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불사국 (不斯國)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사로육촌 (斯盧六村)
사로육촌은 삼한시대에 진한(辰韓)의 한 소국인 사로국(斯盧國)을 구성했던 6개의 촌락이다. 서벌6촌(徐伐六村)이라고도 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알천양산촌·돌산고허촌·취산진지촌·무산대수촌·금산가리촌·명활산고야촌의 6개 촌이 있었다. 씨족적 취락으로서 6촌장이라는 족장 밑에 혈연과 지연으로 결합된 사회였다. 6촌이 변천하여 6부제로 발전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6촌의 위치에 대해서는 경주와 경주평야 일대로 한정하는 견해와 지금의 경상남·북도 일원으로 확대하는 견해가 있다.
삼한시대 진한 12소국 중 하나.
염해국 (冉奚國)
삼한시대 진한 12소국 중 하나.
진한 소국의 하나인 골벌국의 왕.
아음부 (阿音夫)
진한 소국의 하나인 골벌국의 왕.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우유국 (優由國)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경주 입실리 유적 (慶州 入室里 遺蹟)
경주입실리유적은 경상북도 경주시 입실리에 있는 원삼국시대 진한의 지배층 무덤유적이다. 1920년 철도공사 과정에서 청동 유물이 다수 발견되어 알려졌다. 유물 수량으로 보아 가까이에 있는 여러 기의 목관묘에서 나온 것일 가능성이 높다. 무기류와 의기류, 마구류 등의 청동 유물들이 다수 보이지만, 철기와 토기도 소량 확인된다. 위만조선 또는 낙랑 계통 유물들이 포함되어 있어 서북한계 주민들에 의한 문화 전파 또는 진한 정치체의 문화 교류 양상을 잘 보여 준다.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여담국 (如湛國)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삼한시대의 소국.
주선국 (州鮮國)
삼한시대의 소국.
초기국가시대, 진한의 소국.
이저국 (已柢國)
초기국가시대, 진한의 소국.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해당하는 분지 형태의 고원.
운봉고원 (雲峰高原)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에 해당하는 분지 형태의 고원.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호로국 (戶路國)
삼한시대 진한의 소국.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4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만들어진 의성 지역의 중심 고분군으로, 삼국시대 의성 지역에 해당하는 조문국(召文國)의 존재 모습과 이후 신라에 귀속되고, 신라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 학술적 ·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2020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의성 금성면 고분군 (義城 金城面 古墳群)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삼국시대의 고분군이다. 4세기부터 7세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종류의 무덤이 만들어진 의성 지역의 중심 고분군으로, 삼국시대 의성 지역에 해당하는 조문국(召文國)의 존재 모습과 이후 신라에 귀속되고, 신라문화가 정착하는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역사적 · 학술적 · 문화적 가치가 높은 유적이다. 2020년 4월 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