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창원_삼진의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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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앙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 독립만세운동인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에 군중들이 몰려들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김수동 등 7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고앙주 (高昻柱)
고앙주는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 독립만세운동인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삼진의거에 군중들이 몰려들고 시위가 격렬해지자 일본군의 무차별 사격으로 김수동 등 7명과 함께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수동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중 김수동을 포함한 시위 군중 8명이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수동 (金守東)
김수동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다. 창원군 진전면 출신으로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 진동, 진북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인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를 주도하였다. 만세시위 중 김수동을 포함한 시위 군중 8명이 일본 경찰의 발포로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영환 (金永煥)
김영환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호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김호현 (金浩鉉)
김호현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창원의 진전면 · 진동면 · 진북면 연합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이다. 1919년 4월 3일 창원군 진전면, 진동면, 진북면 독립만세운동 이른바 ‘삼진의거(三鎭義擧)‘에 참여하였다. 수천여 명의 시위 군중과 함께 양촌리 냇가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고 헌병주재소가 있는 진동면으로 시위행진에 가담하였다. 일본 경찰이 쏘는 총탄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