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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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별초군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이다. 경주 별초군이 영주를 공격하였던 것은 저항의 지역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1193년(명종 23) 이후부터 저항 세력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운문적(雲門賊)과 부인사⋅동화사 등의 사원 세력과 합세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경주와 경상도 일대의 저항 세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앙에 대한 위기감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사원 세력의 참여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원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
경주 별초군의 난 (慶州 別抄軍의 亂)
경주 별초군의 난은 1202년(신종 5) 경주의 별초군이 일으킨 저항이다. 경주 별초군이 영주를 공격하였던 것은 저항의 지역적인 기반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며, 1193년(명종 23) 이후부터 저항 세력으로 잔존하고 있었던 운문적(雲門賊)과 부인사⋅동화사 등의 사원 세력과 합세하였던 점이 주목된다. 이는 경주와 경상도 일대의 저항 세력이 연합 전선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것과 그 배경이 중앙에 대한 위기감에 있었음을 보여 준다. 특히 사원 세력의 참여는 최씨 무신 정권의 사원 정책이 그 원인이었다고 여겨진다.
조선후기 전주영장, 경상우수사, 부산첨사 등을 역임한 무신.
문희성 (文希聖)
조선후기 전주영장, 경상우수사, 부산첨사 등을 역임한 무신.
고려시대의 관직명.
도령 (都領)
고려시대의 관직명.
고려시대 양계(兩界)지방에 두어진 주진군(州鎭軍)의 구성부대 가운데 하나.
보반 (步班)
고려시대 양계(兩界)지방에 두어진 주진군(州鎭軍)의 구성부대 가운데 하나.
동경민란은 1190년(명종 20) 이후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저항이다. 이 저항 이후에도 동경에서는 여러 차례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 세력의 연대감을 끌어내기 위해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저항은 최충헌 정권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비록 실패했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게 되었다.
동경민란 (東京民亂)
동경민란은 1190년(명종 20) 이후 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을 중심으로 일어난 저항이다. 이 저항 이후에도 동경에서는 여러 차례의 저항이 일어났고, 그 영향은 경상도 전역으로 확장되었다. 그 가운데 저항 세력의 연대감을 끌어내기 위해 ‘신라부흥운동(新羅復興運動)’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이들 저항은 최충헌 정권의 적극적인 진압으로 비록 실패했지만, 무신정권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남아 있게 되었다.
지유는 고려시대 특수부대 및 단위 조직의 지휘관이다. 별무반·5군·금군·별초군 등의 특수부대 및 자문·군기감·장야서·도교서 등 단위 조직에 속한 일부 공장에도 주어졌다. 낭장·별장·산원 등 중하위 무관들이 주로 이에 보임되었다. 이들의 역할에서 볼 때 주로 신뢰할 만하거나 충성심이 높은 자들이 임명되었고, 정권 변동에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였다.
지유 (指諭)
지유는 고려시대 특수부대 및 단위 조직의 지휘관이다. 별무반·5군·금군·별초군 등의 특수부대 및 자문·군기감·장야서·도교서 등 단위 조직에 속한 일부 공장에도 주어졌다. 낭장·별장·산원 등 중하위 무관들이 주로 이에 보임되었다. 이들의 역할에서 볼 때 주로 신뢰할 만하거나 충성심이 높은 자들이 임명되었고, 정권 변동에서 이들의 역할이 중요하게 작용하기도 하였다.
충주전투(忠州戰鬪)는 1231년(고종 18), 몽골군이 충주에 침입하였을 때 충주 관노들이 대항하여 물리친 전투이다. 제1차 몽골 침입 때 충주까지 남하한 몽골군을 충주읍성에 있던 관노들이 적극적으로 항전하여 물리친 전투이다. 몽골과의 항전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치열한 항전 양상을 보였던 충주에서의 여러 전투 중 첫 번째 전투이며, 하층민들이 전투의 주체였음이 주목되는 전투이기도 하다.
충주전투 (忠州戰鬪)
충주전투(忠州戰鬪)는 1231년(고종 18), 몽골군이 충주에 침입하였을 때 충주 관노들이 대항하여 물리친 전투이다. 제1차 몽골 침입 때 충주까지 남하한 몽골군을 충주읍성에 있던 관노들이 적극적으로 항전하여 물리친 전투이다. 몽골과의 항전에서 지역적으로 가장 치열한 항전 양상을 보였던 충주에서의 여러 전투 중 첫 번째 전투이며, 하층민들이 전투의 주체였음이 주목되는 전투이기도 하다.
구주성전투는 고려 후기 몽고 제1차 침략(1231) 때 구주성(龜州城)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구주는 고려 북계 내륙의 요충지이며 전략적인 거점이었다. 사르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은 내륙로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공성법을 동원하여 구주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맞서 박서가 이끄는 고려군은 치열하게 항전하여 총 4회의 전투가 고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개경 정부의 강화 체결로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몽고군을 구주에 묶어놓아 남하하지 못하게 하여 몽고군 본진의 공격 속도를 늦추었으며 수세에 몰렸던 정부에서 강화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는 데 기여한 전투이다.
구주성전투 (龜州城戰鬪)
구주성전투는 고려 후기 몽고 제1차 침략(1231) 때 구주성(龜州城)에서 벌어진 전투이다. 구주는 고려 북계 내륙의 요충지이며 전략적인 거점이었다. 사르타이가 이끄는 몽고군은 내륙로를 확보하기 위해 온갖 공성법을 동원하여 구주성을 공격하였다. 이에 맞서 박서가 이끄는 고려군은 치열하게 항전하여 총 4회의 전투가 고려의 승리로 귀결되었다. 그러나 개경 정부의 강화 체결로 결국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몽고군을 구주에 묶어놓아 남하하지 못하게 하여 몽고군 본진의 공격 속도를 늦추었으며 수세에 몰렸던 정부에서 강화 협상을 유리하게 진행하는 데 기여한 전투이다.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
주진군 (州鎭軍)
주진군은 고려 전기 북방 국경지대인 북계와 동계의 주·진(州鎭)에 설치된 지방군이다. 고려의 국경지역는 일반 행정구역과는 달리 방어주(防禦州)·진(鎭)을 설치하고 방어사(防禦使)와 진장(鎭長)을 임명하였다. 주현군과 비교해 병종이 다양하게 구분되어 있고, 병력수도 훨씬 많다. 주·진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주진군 조직에 편제되어 평상시에는 교대로 동원되다가 유사시에는 모든 병력이 동원되었다. 남도로부터 번상한 방수군은 중앙에서 파견된 방수장군의 지휘하에 국경 방어 임무를 수행하였다. 몽고군의 침략으로 주·진이 함락되면서 붕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