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최계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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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사진동인전'은 1949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창립부터 참여했던 중견 사진가들이 모여 서울 충무로의 대원화랑에서 개최한 단체전이다. 당시 사진 단체로 '조선사진동맹'이 득세하고 1948년 '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람회'가 성공을 거두자,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핵심 회원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사진전이었다. 이해선, 박필호, 현일영, 김광배, 박영진, 김정래. 임응식, 최계복 등 당시 사진계의 중견들이 참여하였다.
예술사진동인전 (藝術寫眞同人展)
'예술사진동인전'은 1949년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창립부터 참여했던 중견 사진가들이 모여 서울 충무로의 대원화랑에서 개최한 단체전이다. 당시 사진 단체로 '조선사진동맹'이 득세하고 1948년 '임석제예술사진개인전람회'가 성공을 거두자, '조선사진예술연구회'의 핵심 회원들이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만든 사진전이었다. 이해선, 박필호, 현일영, 김광배, 박영진, 김정래. 임응식, 최계복 등 당시 사진계의 중견들이 참여하였다.
예술사진은 서양의 픽토리얼리즘사진을 번역한 용어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경 사이 다양한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출품한 사진 전반을 지칭한 사진의 장르이다. 일제강점기에 예술사진이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1920년대 일본 사진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관 영업 활동을 하며 초상 사진을 촬영해 왔다. 한편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웠던 선각자들은 사진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픽토리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특수인화법, 연초점 기법 등을 활용하여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예술사진 (藝術寫眞)
예술사진은 서양의 픽토리얼리즘사진을 번역한 용어로, 1920년대 후반부터 1940년경 사이 다양한 공모전이나 개인전에 출품한 사진 전반을 지칭한 사진의 장르이다. 일제강점기에 예술사진이 중요한 장르로 부각된 것은 1920년대 일본 사진 문화의 영향 때문이다. 당시 한국의 사진가들은 주로 사진관 영업 활동을 하며 초상 사진을 촬영해 왔다. 한편 일본에서 사진술을 배웠던 선각자들은 사진을 새로운 예술의 형태로 인식하였다. 그들은 픽토리얼리즘의 영향 아래서 특수인화법, 연초점 기법 등을 활용하여 예술사진을 추구하였다.
최계복은 일상생활과 자연적 요소를 주제로 서정성과 민족문화적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사진가이다. 일본에서 사진을 배우고 1933년 귀국하여 대구에서 최계복사진기점을 열었다. 1934년에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대구아마추어사우회를 조직하였으며,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하여 인지도를 얻었다. 해방 이후에도 조선예술사진공모전 및 예술사진동인전에 참가하는 한편, 경북사진문화연맹 결성과 한국사진작가협회 출범 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최계복 (崔季福)
최계복은 일상생활과 자연적 요소를 주제로 서정성과 민족문화적 특성을 드러내는 방식으로 작업한 사진가이다. 일본에서 사진을 배우고 1933년 귀국하여 대구에서 최계복사진기점을 열었다. 1934년에 한국인만으로 결성된 대구아마추어사우회를 조직하였으며, 다수의 공모전에서 수상하여 인지도를 얻었다. 해방 이후에도 조선예술사진공모전 및 예술사진동인전에 참가하는 한편, 경북사진문화연맹 결성과 한국사진작가협회 출범 등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였다. 1960년대에 미국으로 건너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