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토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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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에, 직보문각, 밀직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박인간 (朴仁幹)
고려 후기에, 직보문각, 밀직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경사만은 고려 후기 우대언(右代言)을 역임한 충숙왕 측근 문신이다. 그는 충숙왕 환국 운동을 전개한 충숙왕 측근 세력이다. 충숙왕비 덕비(德妃)의 조카사위이기도 한 경사만은 1321년(충숙왕 8) 이후 좌부대언, 우대언을 역임하였다. 충숙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김인연 등과 함께 왕의 환국을 요청하다가 심왕파의 미움을 받아 순군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경사만 (慶斯萬)
경사만은 고려 후기 우대언(右代言)을 역임한 충숙왕 측근 문신이다. 그는 충숙왕 환국 운동을 전개한 충숙왕 측근 세력이다. 충숙왕비 덕비(德妃)의 조카사위이기도 한 경사만은 1321년(충숙왕 8) 이후 좌부대언, 우대언을 역임하였다. 충숙왕이 원나라에 억류되어 있을 때 김인연 등과 함께 왕의 환국을 요청하다가 심왕파의 미움을 받아 순군옥에 갇히기도 하였다.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충선왕 (忠宣王)
충선왕은 고려 제26대(재위: 1298, 1308~1313) 왕이다. 1298년(충렬왕 24) 충렬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아 즉위했으나, 왕비 계국대장공주와의 불화 및 관제 개편의 참월함 등이 문제가 되어 같은 해 폐위되었다. 충렬왕 사후 1308년(충렬왕 34)에 다시 왕위에 오른 후 개혁 교서를 반포하고 원에 가서 체재하였다. 1313년(충선왕 5) 왕위를 아들 충숙왕에게 물려준 후에도 고려 정치를 좌우하다가 1320년(충숙왕 7) 원 정국 변동 과정에서 토번에 유배되면서 실각하였다. 1325년(충숙왕 12) 원에서 사망하였다.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
흑치상지 (黑齒常之)
흑치상지는 삼국시대 백제의 달솔로, 풍달군장을 역임한 관리이자 장군이다. 백제 멸망시 항복했으나 당나라 군의 약탈에 분개하여 족장 10여 명과 함께 임존성을 근거지로 부흥운동을 전개하여 한때 기세를 떨쳤다. 하지만 다시 항복한 다음 당나라 편에 서서 임존성 함락을 도운 후 당에 가서 무관이 되었다. 부흥운동 종식 후 웅진도독부의 군장이 되었다가 신라의 공격으로 도독부가 소멸하면서 다시 당으로 돌아갔다. 토번과 돌궐을 치는 데 공을 세워 귀족 작호까지 받았으나 측천무후 때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는 무고로 옥에 갇혔다가 자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