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간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 후기에, 직보문각, 밀직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43년(충혜왕 복위 4)
주요 관직
직보문각|밀직사|판밀직사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고려 후기에, 직보문각, 밀직사, 판밀직사사 등을 역임한 문신.
생애 및 활동사항

1315년(충숙왕 2)에 고시관(考試官) 이진(李瑱)이 주관한 과거에서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였다. 그 해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는 못하였다.

직보문각(直寶文閣)으로 상왕(上王)인 충선왕(忠宣王)을 따라 원나라에 갔는데, 1320년에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모함으로 충선왕이 토번(吐蕃: 티베트)으로 유배될 때 수종하던 재상 최성지(崔誠之) 등이 모두 도망을 쳤으나, 대호군 장원지(張元祉) 등 18인과 함께 유배지까지 시종하였다.

1324년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고 진성병의익찬공신(盡誠秉義翊贊功臣)에 봉해졌으며, 뒤이어 밀직사를 거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원나라가 왕제(王弟) 강릉대군 왕기(江陵大君王祺: 뒤에 공민왕)를 불러 입조(入朝)하게 하자 정승 채하중(蔡河中), 전첨의평리(前僉議評理) 손기(孫琦) 등 30인과 함께 수종하여 원나라에 갔으며, 이곳에 있던 원자(元子: 忠穆王)의 사부(師傅)가 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