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5년(충숙왕 2)에 고시관(考試官) 이진(李瑱)이 주관한 과거에서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였다. 그 해 원나라에 가서 과거에 응시했으나 급제하지는 못하였다.
직보문각(直寶文閣)으로 상왕(上王)인 충선왕(忠宣王)을 따라 원나라에 갔는데, 1320년에 백안독고사(伯顔禿古思)의 모함으로 충선왕이 토번(吐蕃: 티베트)으로 유배될 때 수종하던 재상 최성지(崔誠之) 등이 모두 도망을 쳤으나, 대호군 장원지(張元祉) 등 18인과 함께 유배지까지 시종하였다.
1324년에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가 되고 진성병의익찬공신(盡誠秉義翊贊功臣)에 봉해졌으며, 뒤이어 밀직사를 거쳐 판밀직사사(判密直司事)가 되었다.
1341년(충혜왕 복위 2)에 원나라가 왕제(王弟) 강릉대군 왕기(江陵大君王祺: 뒤에 공민왕)를 불러 입조(入朝)하게 하자 정승 채하중(蔡河中), 전첨의평리(前僉議評理) 손기(孫琦) 등 30인과 함께 수종하여 원나라에 갔으며, 이곳에 있던 원자(元子: 忠穆王)의 사부(師傅)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