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평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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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대포시하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성곽터.
돈화 마권자고성 (敦化 馬圈子古城)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대포시하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성곽터.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관지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토축 성곽. 평지성·성곽터.
돈화 석호고성 (敦化 石湖古城)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관지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토축 성곽. 평지성·성곽터.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사하연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성곽터.
돈화 손선구고성 (敦化 孫船口古城)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사하연진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성곽터.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흑석향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성곽터.
돈화 흑석고성 (敦化 黑石古城)
중국 길림성 연변조선족자치주 돈화시(敦化市) 흑석향에 있는 남북국시대 발해의 성곽. 평지성·성곽터.
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평지에 둘러쌓은 성으로 비정된다. 전체 둘레는 약 2.7km이다. 현전하는 석축 성벽은 4세기에 쌓아져 만들어졌는데, 3세기 중반 이후부터 도성 경관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으로 천도하는 427년까지 고구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국내성 (國內城)
국내성은 중국 지린성 지안시에 있는 고구려의 도성 유적으로, 네모반듯한 모양의 평지에 둘러쌓은 성으로 비정된다. 전체 둘레는 약 2.7km이다. 현전하는 석축 성벽은 4세기에 쌓아져 만들어졌는데, 3세기 중반 이후부터 도성 경관이 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평양으로 천도하는 427년까지 고구려의 도성 역할을 하였다.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산성 (山城)
산성(山城)은 적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하여 산지의 자연 지형을 이용하여 쌓은 성곽이다.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산성이 발달하었다. 현존하는 성곽 중 왕성이나 도성, 조선시대의 읍성을 제외하면 대부분 산성이다. 산성은 대부분 적의 공격을 관측하기 좋은 교통의 요충지에 구축되었다. 산성은 방어에 유리하지만 적의 포위 공격에 대비하여 성내에 집수 시설과 군수 물자를 비축해 두어야 하였다. 산성을 쌓는 방법은 축성 시기나 축성 주체에 따라 달랐으며, 군사적인 기능 외에 행정을 관할하는 치소성의 역할도 하었다.
남원읍성(南原邑城)은 1477년 성종의 명에 의해 축성하기 시작하여 1530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1593년 7월 임진왜란 때 파손된 남원읍성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와 양원(楊元)이 옹성과 치성, 양마장과 해자 등을 설치하며 증축하였다. 남원읍성은 평지성으로, 4벽의 중간에 문이 개설되었으며, 지대석을 놓고 대형의 석재를 20cm 정도 들여쌓기한 조선시대의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성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양마장 시설도 발견된다.
남원읍성 (南原邑城)
남원읍성(南原邑城)은 1477년 성종의 명에 의해 축성하기 시작하여 1530년 이전에 완성되었다. 1593년 7월 임진왜란 때 파손된 남원읍성을 명나라 장수 낙상지(駱尙志)와 양원(楊元)이 옹성과 치성, 양마장과 해자 등을 설치하며 증축하였다. 남원읍성은 평지성으로, 4벽의 중간에 문이 개설되었으며, 지대석을 놓고 대형의 석재를 20cm 정도 들여쌓기한 조선시대의 축성법을 잘 보여주는 성이다. 이곳에서는 우리나라 성곽에서는 거의 볼 수 없는 양마장 시설도 발견된다.
안학궁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유적이다. 대성산 남쪽에 자리하는 전체 둘레 약 2.5㎞의 마름모꼴 평지성이다. 일반 거주구역 등을 포함하지 않은 왕궁 유적으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6세기 이전설, 6세기 초반설, 6세기 후반설, 고구려 후기설, 고려시대설 등의 이견이 있다.
안학궁 (安鶴宮)
안학궁은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 유적이다. 대성산 남쪽에 자리하는 전체 둘레 약 2.5㎞의 마름모꼴 평지성이다. 일반 거주구역 등을 포함하지 않은 왕궁 유적으로, 조성 시기에 대해서는 6세기 이전설, 6세기 초반설, 6세기 후반설, 고구려 후기설, 고려시대설 등의 이견이 있다.
성곽을 만드는 건축기술.
축성술 (築城術)
성곽을 만드는 건축기술.
연천 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 북안에 있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이다.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역할을 했던 임진강 유역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호로고루의 성벽 축성에는 토성과 석성을 결합한 독특한 토목기술이 적용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토기와 기와류, 석기, 철기 등 위계가 높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호로고루는 고구려 축성기술과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천 호로고루 (漣川 瓠蘆古壘)
연천 호로고루는 경기도 연천군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 북안에 있는 현무암 대지 위에 구축되어 있는 삼각형 모양의 강안평지성이다. 200여 년간 고구려와 신라의 국경 역할을 했던 임진강 유역에서 중요한 전략적 요충지였다. 호로고루의 성벽 축성에는 토성과 석성을 결합한 독특한 토목기술이 적용되었다. 또한 이곳에서 토기와 기와류, 석기, 철기 등 위계가 높은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었다. 호로고루는 고구려 축성기술과 생활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연천 당포성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 위에 축성되어 있다. 동성벽은 길이 50m, 잔존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며 전체 둘레는 450m 정도이다.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 단애를 이루지 않은 동쪽에만 토성과 석성의 축성기법을 결합하여 성벽을 쌓았다. 임진강이 국경 하천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연천 당포성 (漣川 堂浦城)
연천 당포성은 경기도 연천군 미산면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성곽이다. 2006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임진강과 한탄강이 지류와 만나 형성하는 약 13m 높이의 긴 삼각형 단애 위에 축성되어 있다. 동성벽은 길이 50m, 잔존높이 6m 정도이며, 동벽에서 성의 서쪽 끝까지의 길이는 약 200m에 달하며 전체 둘레는 450m 정도이다. 지형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직 단애를 이루지 않은 동쪽에만 토성과 석성의 축성기법을 결합하여 성벽을 쌓았다. 임진강이 국경 하천 역할을 했던 삼국시대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은 귀중한 문화유적이다.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
환도성 (丸都城)
환도성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도성이다. 유적은 중국 지린〔吉林〕성 지안〔集安〕시에 있다. 지안시 북쪽의 산성자산성(山城子山城)으로 비정된다. 『삼국사기』에서는 198년 축조된 이래, 여러 차례 파괴와 개축을 거쳐 342년까지 도성의 주요 기능을 수행하였다고 전한다. 다만 고고학적으로는 5세기 중반 이전에 도성으로 사용되었던 흔적이 확인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