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필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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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설관은 고려 후기 국왕을 숙위하고 궁궐의 관리를 담당하던 몽골풍의 조직에 대한 총칭이다. 고려 충렬왕이 몽골의 제도를 차용하여 조직한 근시(近侍) 조직으로, 주로 의관자제(衣官子弟)와 문신관료(文臣官僚)들로 구성되었다. 겁설관으로는 군사적 역할을 하는 홀치[忽赤], 문서 행정 관련의 필도치[必闍赤] 등을 비롯하여 우달치[迂達赤], 속고치[速古赤], 파오치[波吾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있었다.
겁설관 (怯薛官)
겁설관은 고려 후기 국왕을 숙위하고 궁궐의 관리를 담당하던 몽골풍의 조직에 대한 총칭이다. 고려 충렬왕이 몽골의 제도를 차용하여 조직한 근시(近侍) 조직으로, 주로 의관자제(衣官子弟)와 문신관료(文臣官僚)들로 구성되었다. 겁설관으로는 군사적 역할을 하는 홀치[忽赤], 문서 행정 관련의 필도치[必闍赤] 등을 비롯하여 우달치[迂達赤], 속고치[速古赤], 파오치[波吾赤], 조라치[詔羅赤], 팔가치[八加赤] 등이 있었다.
박항은 고려 후기 밀직부사, 찬성사,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53년(고종 40) 몽골군이 춘주성(春州城)을 함락하였을 때 부모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원 간섭기(元干涉期)에는 여려 차례 원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맡은 외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일본 원정 준비 때 김방경(金方慶)을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에 임명하게 해 몽골군 장수 흔도(忻都), 홍다구(洪茶丘)의 횡포를 막았다. 문장을 잘하고 대인 관계가 원만하며 업무에 충실했던 인물이라는 평을 얻었다.
박항 (朴恒)
박항은 고려 후기 밀직부사, 찬성사, 지공거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53년(고종 40) 몽골군이 춘주성(春州城)을 함락하였을 때 부모가 모두 피해를 입었다. 원 간섭기(元干涉期)에는 여려 차례 원에 사신으로 파견되어 맡은 외교적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였고, 일본 원정 준비 때 김방경(金方慶)을 정동도원수(征東都元帥)에 임명하게 해 몽골군 장수 흔도(忻都), 홍다구(洪茶丘)의 횡포를 막았다. 문장을 잘하고 대인 관계가 원만하며 업무에 충실했던 인물이라는 평을 얻었다.
안전은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찰사, 지밀직사사, 서북면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유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 전라도안찰사, 좌승지, 부지밀직사사, 충청도안무사, 지밀직사사, 경상도도지휘사, 충청도도지휘사, 서북면도지휘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주로 충렬왕 대 정방의 필도적(비칙치)으로 활약하였으며, 인사 행정에 있어서 굳게 바름을 지키고 아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람들이 쇠떡[鐵餻]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안전 (安戩)
안전은 고려 후기에 전라도안찰사, 지밀직사사, 서북면도지휘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유경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으며, 과거에 급제하여 시어사, 전라도안찰사, 좌승지, 부지밀직사사, 충청도안무사, 지밀직사사, 경상도도지휘사, 충청도도지휘사, 서북면도지휘사를 차례로 역임하였다. 주로 충렬왕 대 정방의 필도적(비칙치)으로 활약하였으며, 인사 행정에 있어서 굳게 바름을 지키고 아부하지 않았다고 하여 사람들이 쇠떡[鐵餻]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염승익은 고려 후기에 필도치, 도첨의중찬, 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78년(충렬왕 4) 필도치(비칙치)에 임명되었고, 현화사의 불전을 세웠으며, 현화사를 수리하고, 남계원·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묘법연화경』 7축과 「아미타여래도」를 제작, 봉안하였다.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염승익 (廉承益)
염승익은 고려 후기에 필도치, 도첨의중찬, 흥법좌리공신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78년(충렬왕 4) 필도치(비칙치)에 임명되었고, 현화사의 불전을 세웠으며, 현화사를 수리하고, 남계원·왕륜사의 석탑을 수리하였다. 『묘법연화경』 7축과 「아미타여래도」를 제작, 봉안하였다. 흥법좌리공신에 봉해지고, 도첨의중찬으로 치사하였다.
조인규는 고려 후기에 중찬, 사도, 시중, 참지광정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37년(고종 24)에 태어나 1308년(충렬왕 34)에 사망했다. 몽고어 통역관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탁월한 몽고어 구사력으로 원나라 세조에게 신임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어 정치적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 충선왕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다가 조비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끌려가 안서에 유배되었다. 원나라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충선왕의 정치력이 복권되면서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조인규 (趙仁規)
조인규는 고려 후기에 중찬, 사도, 시중, 참지광정원사 등을 역임한 문신이다. 1237년(고종 24)에 태어나 1308년(충렬왕 34)에 사망했다. 몽고어 통역관으로 충렬왕을 수행하여 원나라에 입조하였다. 탁월한 몽고어 구사력으로 원나라 세조에게 신임을 받아 관직에 임명되었다. 그의 딸이 세자비로 간택되어 정치적 지위가 더욱 높아졌다. 충선왕의 개혁정책을 지지하다가 조비무고사건에 연루되어 원나라에 끌려가 안서에 유배되었다. 원나라 무종을 옹립한 공으로 충선왕의 정치력이 복권되면서 선충익대보조공신이 되었다.
한수는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 판후덕부사 등을 역임하고 『유항집』을 남긴 문신이다. 공민왕 때에 오랫동안 문한직을 맡았으며 우왕대에 공신으로 책봉되고 상당군, 청성군에 봉해졌다. 문장과 글씨에 모두 능해 많은 서예 작품과 시문을 남겼으며, 이색·염흥방 등과 시문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한수 (韓脩)
한수는 고려 후기에 동지밀직, 판후덕부사 등을 역임하고 『유항집』을 남긴 문신이다. 공민왕 때에 오랫동안 문한직을 맡았으며 우왕대에 공신으로 책봉되고 상당군, 청성군에 봉해졌다. 문장과 글씨에 모두 능해 많은 서예 작품과 시문을 남겼으며, 이색·염흥방 등과 시문으로 활발하게 교유하였다.
고려후기 도첨의찬성사, 검교첨의정승, 상의식목도감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폐행(嬖幸).
이지저 (李之氐)
고려후기 도첨의찬성사, 검교첨의정승, 상의식목도감사 등을 역임한 관리. 무신, 폐행(嬖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