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학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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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은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0년(고종 27)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했다.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최남선 (崔南善)
최남선은 일제강점기 『심춘순례』, 『백두산근참기』, 『금강예찬』 등을 저술한 문인이다. 언론인이자 사학자,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1890년(고종 27)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했다. 일본 유학 후 『소년』 등 잡지를 발행하고 저술을 통해 신문화운동을 벌였다. 조선어사전 편찬을 기획했고 3·1운동 당시 「독립선언서」를 작성했다.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연구하는 계명구락부에 참여했고 조선사편수회 위원으로 활동했다. 1935년부터 한국과 일본의 문화 뿌리가 같다는 ‘문화동원론’을 주장하며 일본 신도 보급, 학병지원 권유 등 친일활동에 적극 나섰다.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안재홍 (安在鴻)
안재홍은 해방 이후 민정장관, 국회의원 등을 역임한 정치인이자 사학자이다. 1891년(고종 28)에 태어나 1965년에 사망했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유학중 대한민국청년외교단에 가담하여 활동하다 옥고를 치렀다. 귀국 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며 신간회사건, 조선어학회사건, 임시정부 활동 등으로 여러 차례 옥고를 겪었다. 광복 후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부위원장이 되었으나 결별하고 국민당을 결성하여 당수가 되었다. 독립촉성중앙협의회에 참가하여 이승만을 회장으로 추대했고 과도입법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을 역임했다. 1950년 국회의원에 당선되었으나 납북되었다.
유덕고려학우회는 1921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유럽 최초의 유학생 단체이다. 김갑수 등 11명이 학생 자체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고 한인의 자치와 외교에 관한 활동을 주관하기 위해 창립하였다. 『회보(Heba)』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으며 학생 상호간의 구제활동과 상해 임시정부 지원, 대외선전활동, 유럽에서 개최되는 민간 차원의 국제대회 참가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여 관동대지진 때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고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유덕고려학우회 (留德高麗學友會)
유덕고려학우회는 1921년 1월 1일 독일 베를린에서 결성된 유럽 최초의 유학생 단체이다. 김갑수 등 11명이 학생 자체의 발전과 친목을 도모하고 한인의 자치와 외교에 관한 활동을 주관하기 위해 창립하였다. 『회보(Heba)』라는 기관지를 발행하였으며 학생 상호간의 구제활동과 상해 임시정부 지원, 대외선전활동, 유럽에서 개최되는 민간 차원의 국제대회 참가와 같은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또한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여 관동대지진 때에 일본이 저지른 만행을 세계 각국에 널리 알리고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박중화 (朴重華)
일제강점기 때, 신민회에서 활동하며 청년학우회와 대동청년당을 조직하였고, 조선노동공제회 중앙집행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
송내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전라지단 조직책임자, 신간회 상무간사, 조선공산당 검사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출생하여 1928년 사망했다. 1914년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뒤에 소안도에서 교사가 되었다. 1920년 11월 무장투쟁단체인 대한독립단의 전라지단 조직책임자가 되었다. 1922년 말 반일비밀결사단체 수의위친계의 결성을 주도했다. 1926년 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7년 1월 소안도에서 청년비밀결사 일심단을 조직하고, 12월에는 조선공산당 제3차 당대회에서 검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송내호 (宋乃浩)
송내호는 일제강점기 때, 대한독립단 전라지단 조직책임자, 신간회 상무간사, 조선공산당 검사위원 등을 역임한 독립운동가이다. 1895년 출생하여 1928년 사망했다. 1914년 서울 중앙학교를 졸업한 뒤에 소안도에서 교사가 되었다. 1920년 11월 무장투쟁단체인 대한독립단의 전라지단 조직책임자가 되었다. 1922년 말 반일비밀결사단체 수의위친계의 결성을 주도했다. 1926년 말 조선공산당에 입당했다. 1927년 1월 소안도에서 청년비밀결사 일심단을 조직하고, 12월에는 조선공산당 제3차 당대회에서 검사위원으로 선임되었다. 1990년 애족장에 추서되었다.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1923년 10월 2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한 민족대회이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독일에 있는 한인들의 위대한 회의(Great Meeting of Koreans in Germany)」라고 일컬어지는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여 관동대지진 발생 시 일제의 만행으로 당한 한인들의 억울한 죽음과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독일어 전단지 5천부, 영어 전단지 2천부를 인쇄하여 해외 한인사회와 각국 정부와 기관 등에 배포하였다.
재독한인대회 (在獨韓人大會)
관동대지진 당시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널리 알리기 위한 목적으로 1923년 10월 26일 독일 베를린에서 개최한 민족대회이다. 독일에 거주하는 한인들이 「독일에 있는 한인들의 위대한 회의(Great Meeting of Koreans in Germany)」라고 일컬어지는 ‘재독한인대회’를 개최하여 관동대지진 발생 시 일제의 만행으로 당한 한인들의 억울한 죽음과 일제의 가혹한 식민통치를 규탄하였다. 독일어 전단지 5천부, 영어 전단지 2천부를 인쇄하여 해외 한인사회와 각국 정부와 기관 등에 배포하였다.
1926년 10월,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 내에서 조직된 한국인 학생들의 전체모임.
상해학생연합회 (上海學生聯合會)
1926년 10월, 중국 상해 프랑스 조계 내에서 조직된 한국인 학생들의 전체모임.
대성중학교는 1921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촌에 설립된 민족계 사립 중등교육기관이다. 1921년 7월 21일 유교 및 청림교 신도와 지방 부호를 비롯해 조선 각지의 민중들에게서 희사받은 교사건축 기금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대성유교 공교회의 주도로 학교가 운영되었으나, 진보적인 학생들로 구성된 학우회를 중심으로 진보적 사상으로 교육내용이 변화되었다. 이후 진보적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일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선봉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대성중학교 (大成中學校)
대성중학교는 1921년, 중국 길림성 간도 용정촌에 설립된 민족계 사립 중등교육기관이다. 1921년 7월 21일 유교 및 청림교 신도와 지방 부호를 비롯해 조선 각지의 민중들에게서 희사받은 교사건축 기금으로 설립되었다. 설립 당시 대성유교 공교회의 주도로 학교가 운영되었으나, 진보적인 학생들로 구성된 학우회를 중심으로 진보적 사상으로 교육내용이 변화되었다. 이후 진보적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반일투쟁에 적극 참여하는 선봉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다.
삼일공학학우회는 1925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삼일중학의 재학생이 조직한 학생운동 단체이다. 삼일중학은 한인과 중국인 남녀 학생 모두를 교육하는 기관이며, 초급 3학년, 고급 2학년제로 운영되었다. 재학생 중의 일부는 삼일공학학우회를 조직하여 상하이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한인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한국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민족통일전선을 구성하고자 했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였다.
삼일공학학우회 (三一公學學友會)
삼일공학학우회는 1925년, 중국 상하이에 설립된 삼일중학의 재학생이 조직한 학생운동 단체이다. 삼일중학은 한인과 중국인 남녀 학생 모두를 교육하는 기관이며, 초급 3학년, 고급 2학년제로 운영되었다. 재학생 중의 일부는 삼일공학학우회를 조직하여 상하이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한인학생운동에 참여하여 한국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민족통일전선을 구성하고자 했던 움직임에 적극 동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