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중학(三一中學)은 삼일공학이라고도 하며, 1923년 상해고등보수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김규식(金奎植)이 개교한 학교이다. 한국 유학생의 교양을 지도하고, 더 큰 뜻은 재중국 한국인 유학생들에게 편의를 도모하고자 설립한 학교이다. 1924년 9월 15일 상해고등보수학원은 개학한 후, 많은 한국인들의 호응으로 좋은 성과를 얻어 정식 중학으로 편제를 변경할 계획이었다.
그 결과 1925년 8월 29일 명칭이 삼일중학으로 변경되었고, 학교운영자금으로 1,000원의 기부금도 들어왔다. 한인과 중국인 남녀 학생 모두를 교육하는 기관이며, 학제는 초급 3학년, 고급 2학년제로 운영되었다. 교육내용은 영어, 산술, 수학 및 중국어, 중국문을 중심으로 중국 각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수준으로 교육하였다.
한편, 외국에 유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에게 편의를 제공할 의도에서 외국의 유명한 각 대학과 연락하여 입학할 수 있도록 도모하기도 하였다. 교원으로는 원장 김규식[영어], 원감 최창식[수학, 산학], 교사는 여운형[영어], 현승건[영어], 김종상, 신국권, 서병호[수학, 산학], 김추봉[국어, 국사] 등이 있었으며, 특히 중국어는 중국 시문계에서 활약하고 있던 요백린(姚伯麟)이 담당하였다.
학생은 60여 명이었으며, 학비는 학생들의 경제사정을 고려하여 최소한도로 1년에 50원, 반년은 25원을 받았다. 재학생 중의 일부는 삼일공학학우회를 조직하여 상하이에서 활발히 전개되었던 한인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하였다.
삼일공학학우회는 한국독립운동의 일환으로 민족통일전선을 구성하고자 했던 움직임에 동참하였다. 한국 유학생들의 정치적 운동은 대개 중국의 학생단체와 연합함으로써 전개되었다. 상하이는 베이징과 더불어 중국의 학생운동이 가장 치열하게 일어난 곳으로 상하이에서 일어난 학생층 주도의 반제, 반일 운동에 한국 유학생들은 적극 동참하였다.
중국의 학생운동이 치열해짐에 따라 각기 개별적으로 활동하고 있던 한인 학생 단체들은 효과적으로 단합하여 학생운동을 전개하고자 상해한인학우회가 결성되었는데, 여기에 삼일공학학우회를 비롯해 상해소년회, 청년동맹회, 상해한인유학생회 등이 포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