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용 요약
정의
1911년, 중국 길림성 화룡현 명동학교에 병설되었던 민족계 여성교육기관.
설립 배경
교육 활동
1911년 당시 명동학교 여학부에는 보통과 53명, 고등과 12명, 합하여 65명이 재학하고 있었다. 1913년 당시에도 명동여학교 학생은 60명에 달하였으며, 대부분이 각 지역에서 온 유학생이었고 부형과 학생들이 열심으로 노력한 결과 1914년에는 졸업생이 나올 것을 전망되었다.
당시 간도 총영사대리 사카이 요사키치[堺與三吉]가 일본 외무대신 우치다 고사이[內田康哉] 앞으로 보낸, 1913~1920년까지 보고에 지속적으로 ‘명동여학교’가 ‘불령선인 단체’로 포함되어 있어, 명동여학교가 민족교육, 반일 투쟁교육을 전개하고 있었음을 말해준다.
참고문헌
단행본
- 박금해, 『중국 조선족 교육의 역사와 현실』(경인문화사, 2012)
- 윤병석 외, 『명동학교 100주년 기념 북간도지역 한인 민족운동』(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2008)
- 박주신, 『간도한인의 민족교육운동사』(아세아문화사, 2000)
논문
- 리홍준, 「반일민족교육의 선봉: 명동학교」(『연변문사자료』 5, 정협연변조선족자치주위원회, 1988)
신문 · 잡지
- 『신한민보』(1913. 10. 3.)
인터넷 자료
- 한국사데이터베이스 「不逞團關係雜件」 일본 외무성기록(http://db.history.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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