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학교 ()

목차
개신교
개념
한국 개신교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교육기관.
목차
정의
한국 개신교에서 성서를 가르치는 교육기관.
내용

초기 한국교회는 선교사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평신도에게 성경을 가르침으로써 전도인 교역자를 배양하고, 교회에 봉사하는 주일학교 교사 등과 같은 요원을 양성하는 일이 절실히 요망되었는데, 미국 감리교 선교사인 스크랜톤(Scranton,M.F.) 부인이 1888년(고종 25) 서울에서 성경반을 시작함으로써 그 효시가 되었다.

물론 그 교육형태는 아주 초보적인 것이었으나, 한국교회 최초의 평신도교육기관이었다는 점에서, 그리고 여성계몽을 위한 특출한 면목을 표시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아볼 수 있다.

1890년에 미국 장로교 선교사 언더우드(Underwood,H.G.)는 기포드(Gifford,D.L.)와 함께 평안도와 황해도, 그리고 서울 등의 지역에서 선교하고 있던 전도인 여러 명을 소집하여 성경지식을 교수하였다. 불과 한 달 남짓한 짧은 기간이었으나 현저한 성과를 올려, 2년 후에는 수강생이 16명으로 크게 늘었다.

장로교 여성을 위한 성경교육은 헤론(Heron)부인이 제일 먼저 시작했으나, 언더우드 부인에 의하여 1894년에 실시된 ‘전도부인 양성반’이 체계화된 성경교육기관이었다고 할 수 있다.

1897년에는 평양에서 6개월 과정의 단기 성경학원이 시작되었는데, 여기서는 주로 사범교육을 시행하여 배운 내용을 그대로 자기 교회로 돌아가서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하였다.

선교부에서는 이러한 단기 성경학원을 선교부 지회가 있는 곳마다 세우도록 권장하였으며, 대부분이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의 사정을 참작하여 농한기를 이용해서 1년에 수개월씩 수업하여 2년 내지 6년 동안 전과목을 이수하게 하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지방 성경학원은 그 명칭을 ‘고등성경학교’라고 바꾸기 시작하였고, 수업기간도 1년에 7, 8개월씩으로 연장하였을 뿐만 아니라 3년 수업과정으로 제도화하였다. 교과내용도 성경 이외에 일반 고등학교의 과목까지 지도하여 교회의 평신도지도자로서 또는 교역자로서 손색이 없는 자질을 구비하도록 배려하였다.

이렇게 해서 교육을 받은 학생수가 일제 말기에 3,687명에 달하였으나, 일제의 신사참배의 강요로 신앙진리가 유린당하게 될 위기를 맞자, 성경학교는 모두 문을 닫고 일제에 항거하였다. 1945년 8·15광복과 더불어 성경학교는 다시 개교되어 그 수가 대폭 늘어났다.

하지만 그 중에는 8·15광복 직후 자유의 물결과 함께 초교파적인 명분을 내세워 교단 배경이나 소속도 분명하지 않은 잡다한 성경학교가 여러 곳에 생겨났으며, 이러한 현상은 교파난립의 한 원인이 되었다. 이후 성경학교는 ‘신학교’의 형태로 변환되는 등 그 독특한 구실을 못하고 쇠퇴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조선예수교장로회사기』상(차재명, 1928)
『조선감리교회사』(감리교총리원 교육국, 1975)
『한국기독교성장사』(김광수, 기독교문사, 1976)
집필자
김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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